2008년 10월 2일, 배우 최진실이 사망하게 되면서 , 국민 여배우이자 슈퍼스타라 일컫던
최진실의 자살은 대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거의 국민장을 치루는 분위기였다.)
여파가 워낙 컸던지라 사망 이유에 관한 추측과 루머가 난무하였고,
이혼과 전남편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과 악플 루머를 원인으로 잠정 결론 내려졌다.
그녀의 억울한 루머로 인해 사망하게 만든 사건을 되돌아 보자.
1. 사건 개요
2008년 9월 배우 안재환이 사망했다.
안재환은 채무 변제에 어려움을 겪다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안재환이 최진실의 친구인 코미디언 정선희의 남편이었고 이걸 빌미 삼아 최진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라는 거짓 소문이 퍼졌고 이로 인해 최진실은 고통을 겪은 바 있다.
그 거짓 소문은 청와대 경호실 출처라며 채권자 최진실이 채무자 안재환을 압박해서
안재환을 죽게 했다는 내용이었고, 이 소문에는 최진실의 어머니도 등장하는 등 정교한
이야기 구성으로 신빙성을 높였다. 최진실도 이 날조가 전문가의 솜씨라고 생각했단다.
이러한 루머는 최진실을 2008년 10월 2일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했다.
2. 최진실 사망 이전의 루머
2008년 9월 8일 개그맨 정선희 남편 안재환의 사망
배우 안재환이 자신의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직후 최진실에 대한 루머가 유포된다.
'대통령실 경호처 경호과장이 말하길 최진실이 수십 억 원을 안재환에게 빌려주었고
그 돈을 갚으라고 압박을 가하자 안재환이 자살했다'는 쪽지가 인터넷상에 유포된 거다.
쉽게 말해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거다. 남편 사망이라는 엄청난 돌발 상황으로 멘붕 상태인
친구 정선희가 이런 일까지 겪게 되자 최진실은 자신의 우정을 모욕하는 범인들에게 크게 분노를 하게 된다.
최진실은 "최진실이 안재환을 대상으로 사채업을 했다"라는 거짓 소문에 시달렸다.
최진실은 2008년 9월 20일까지도 가볍게 넘기다가 인터넷상의 여론이 심각하게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2008년 9월 21일 입장 변화를 보였다.
"연예인으로 살다보면 어느 정도의 루머를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안재환 씨의
유가족과 친구 정선희도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라고 말하며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2008년 9월 22일 최진실은 경찰에 '명예훼손' 수사 의뢰
최진실은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이 사건을 의뢰했다. 인터넷상에서 해당 거짓 소문이
확대되면서 각종 포털 사이트에 2008년 9월 22일 하루 동안 최진실의 '연관 검색어'로
'안재환'과 '사채'가 언급되는 것을 지켜본 최진실의 소속사는 해당 포털 사이트에
해당 게시물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하여 최진실의 '연관 검색어'에서 '사채'라는 용어는 빠졌다.
최진실 소속사
"비슷한 피해자가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게 됐다"
2008년 9월 28일, 증권사 직원 백 모 씨(여·25세)가 경찰에 출두
증권사 직원 백 모 씨가 피의자 진술을 하였다.
악마의 전화
최진실은 그 날 저녁 백 모 씨로부터 선처를 요구하는 전화를 받았다.
이에 최진실은 백 모 씨가 자신의 연락처를 알아낸 점과
당당하게 선처를 요구하는 태도에서 심한 두려움과 모멸감을 느꼈다.
그 후에도 계속된 백 모 씨의 일방적인 전화에 대해 최진실은 친구인 퀸의
김재우 기자에게 '악마의 전화'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진실은 백 모 씨가 최초 유포자를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전화를 받았다.
2008년 9월 29일, 백 모 씨 입건
서울 서초경찰서 사이버범죄 수사팀은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백 모 씨를 입건했다.
2008년 9월 30일(사망 이틀 전인 친구 김재우에게 한 말)
'허위사실유포와 관련된 언급 루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 루머 당사자는 철창만 없을 뿐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근거 없는 루머는 그 사람 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자식들, 그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루머와 악성 댓글은 신체적인 폭력만 없다는 것뿐, 마음에 엄청난 상처를 안긴다는 점에선
폭력의 수위가 결코 덜하지 않다. 사람들이 연예인을 너무 막 대하는 것 같아 슬프다.
그동안 많은 부분에서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더 비우고 더 몸을 낮추라고 하니
내가 어디까지 자존심을 버려야 할까. 행복했던 시절, 그 행복이 당연하다며 오만했던 시절이
지금은 너무도 그립다. 이 고통은 아무도 몰라. 그냥 최진실이 누렸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놓고 싶을 정도로 너무도 아파 미치겠어.'
'사채설 유포자가 잡혔으니 이제는 사람들이 내 진실을 믿어줄 줄 알았어.
그런데 토론 게시판에서 내 이야기에 서로 찬반양론을 펼치는데,
아직도 내가 안재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덕 사채업자로 그대로 묵인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나 너무 떨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아. 죽으면 내 진실을 믿어줄까.
내 이름은 ‘최진실’인데, 사람들은 나를 ‘최가식’이라고 부르네.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않니?
환희, 준희에게는 미안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어머니보단 죽어서 진실이
밝혀진 어머니가 낫지 않을까.'
경찰 조사 결과
허위사실유포의 근원지는 증권가 사설 정보지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기술적인 문제로 최초 유포자는 찾아내지 못했다.
미지의 인물이 대한민국 대통령실 경호처 경호과장 출처라면서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설을 작성했고, 그것을 쪽지 형태로 백 모 씨 등에게 보냈으며, 백 모 씨 등은 이 쪽지를
150여 명에게 재전송했다. 경찰 조사에서 백 모 씨 등은 이 쪽지를 보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고,
경찰이 백 모 씨 등의 컴퓨터를 조사했지만 저장된 내용이 없어서 최초 유포자는 잡지 못했다.
https://mr-trot-tv.tistory.com/entry/%EC%95%88%EC%9E%AC%ED%99%98
3. 최진실 '갑작스러운 사망'
2008년 10월 1일
최진실은 오후 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배우 손현주와 광고 사진을 촬영하였다.
이후 '드림엔터박스' 대표이사 서상욱, 스타일리스트 이경은,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팀장 김대오 등과
회식 자리를 가졌다. 회식이 끝난 후 매니저 박상호가 차로 최진실을 자택까지 이동시켰다.
2008년 10월 2일 오전 0시 47분
'퀸' 편집장 김재우와 마지막 통화를 하였다. 그때 괴로운 심경을 드러냈고, 죽음을 언급했으며,
최진영을 도와 자신의 아들과 딸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최진실과의 통화 직후, 김재우는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과 통화를 했고 최진실의 상태를 설명했다.
김재우와의 통화 직후, 정옥숙은 최진실의 상태를 살폈고 최진실은 정옥숙을 안심시켰다.
2003년부터 김재우와 인연
최진실은 김재우에게 많은 말과 글을 남겼는데, 언젠가 그 글들을 통해 자신에 대한 대중의
오해가 풀리기를 바랐었고 , 최진실은 김재우에게 비망록을 남긴 바 있다.
2008년 10월 2일 오전 6시 15분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의 자택 욕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자살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고,
직접적인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였다. 경찰 조사에서 최진실은 경한 수준의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자녀의 양육과 연예인의 위상 등과 관련하여 고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합리적•이성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사회 상황에 큰 고통을 토로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메모장에 적힌 내용
최진실의 어머니와 주변 지인의 증언을 토대로 추측했을 뿐 정확하게 밝혀진 사유는 없다.
우울증
최진실의 우울증은 가난과 가정환경으로 10대 때부터 있었으며, 이미 18살에 자살 시도를
했던 적이 있었고, 정확히 말하면 이혼 후에 우울증이 생긴 것이 아닌, 이혼 후에
우울증이 악화된 것, 최진실은 결혼 전에도 고독함과 우울함을 자주 비췄었다고 한다.
"나는 말 상대가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고독하고 외롭다."
2008년 10월 2일 부검
처음에 유족들은 검찰이 내린 부검 결정에 반대했으나, 유족들 중 한 명이 부검 동의서에 서명함에 따라
강남성모병원에서 오후 9시부터 오후 10시 20분까지 1시간 20분에 걸쳐 부검이 진행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타살을 증명할 만한 단서를 발견할 수 없다는 부검 소견을 밝혔다.
2008년 10월 3일, 경찰은 공식 브리핑에서 자살이라고 발표하였다.
2008년 10월 4일, 유해는 오전 7시 30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의료원에서 발인식을 가졌고,
오전 10시 경기도 성남시 성남영생원에서 화장되어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 있는 갑산공원에 안치되었다.
베르테르 효과
최진실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여파가 매우 컸던지라 베르테르 효과도 크게 일어났다.
최진실 자살 직후 한 달 동안 1,700명이 자살하면서 일시적으로 자살률이 70% 증가했다.
1990년부터 2019년 사이에 자살한 유명인에 대해 분석한 결과 최진실의 베르테르 효과가 가장 컸다.
최진실의 사망 후에도 최진실의 '미니홈피'는 열려있었다.
2010년 7월, 최진실의 딸 최준희가 최진실의 '미니홈피'에 "엄마 사랑하고 지켜봐"라는
일촌평을 남겼는데, 며칠 후 이것이 기사화되면서 하루 만에 30여 만 명이
최준희의 '미니홈피'를 방문하였고 3천여 명이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4. 최진실 일기장 기록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언론에 의해 유책배우자로 몰리는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 수면제와 항우울제를 복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진실이 얼마나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었는지는 그의 일기장 일부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엄마… 미안해! 약(수면제 혹은 우울증약)에 취해, 약 먹은 사실을 까먹고, 또 입에다가
한 움큼 물구. 눈은 반쯤 감겨서. 나 죽으면 그냥 흰 천에 둘둘 말아 갠지스강에 띄워 달라구…”
“환희야. 수민(딸 준희의 개명 전 이름)아. 나의 아들. 나의 딸아. 엄마 어떻게 하면 좋아?
너희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구나. 엄마는 지금 너무 막막하고 무섭고 너희를 지푸라기라고
생각하고 간신히 너희를 잡고 버티고 있단다. 너희만 아니라면 삶의 끈을 놔버리고 싶을 정도다.
하루를 살더라도 너희와 활짝 웃으며 푸른 들판을 달리고 싶고, 한창 예쁜 너희 재롱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눈에 담아 기억의 창고에 넣어두고 싶은데 사는 것 자체가 너무도 힘들어 너희 모습도 놓치고 있구나,
떠날까? 우리 떠나자. 미지의 세계에 대해 불안감, 엄마의 소심한 성격 탓으로 지옥 같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너무도 한심하다. 온 집안을 어두컴컴하게 해두고 불안한 마음으로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해가 지면 어두운 세상을 바라보며 울부짖는다.
환희야 수민아 미안하다. 여러 가지로 엄마가 부족한 게 많아 너희에게 항상 죄짓는 기분이다”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 남자를 저주하며 살 것이다. 아빠라는 존재를 모르고,
아빠의 사랑 없이 자라야 되는 우리 환희와 수민이를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흐른다.
난 아이들을 위해, 우리 엄마가 진영이와 나만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나두 우리 아이들만 위해 살 것이다.
보란 듯이... 나쁜놈, 나와의 인연이 고작 이것밖에는 안 될 거면서 뭘 그렇게 결혼하자고 난리를 피웠을까?...
수민아, 환희야. 엄마가 너희들에게 정말 미안한 점은 아빠를 지켜주지 못한 점이다. 그인 떠났다.
3살도 채 안 된 환희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아빠에게 버림받은 우리 수민이. 그리고 나 세 명뿐이다.
그는 자신만의 또 다른 행복을 위해, 나를 짓밟고, 아이들을 짓밟고 떠나버렸다.
밤만 되면, 더욱 끓어오르는 분노 때문에 그냥 있을 수가 없다. 바보 같은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
그 두 사람(조성민과 내연녀 심마담)에게 늘 당하기만 한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두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나약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면 그냥 쓰러져 영원히 잠들었으면 생각밖엔 없다.
하나님이 정녕 계시는 걸까?.... 계신다면, 계신다면 제발, 저를 지켜주세요.'
'진실'의 일기장(조성민과 이혼후에 김재우 기자에게 만일 내가 잘못되면 세상에 공개해 달라며 남긴다.)
전 남편 조성민(사업이 진행되면서)
"사업하는데 돈 좀 보태라"
때마침 저는 CF모델료 1억을 현찰로 받은 상황이라 그 돈 전부를 건네줬습니다.
최진실
"지금까지 생활비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으니 이제부터 다달이 2백만원씩만 달라"
그때 제 마음은 아무리 여유자금이 있어도 아이들 우유 값은 아빠가 힘들게 벌어오는
돈으로 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너무도 실망스러웠던 점은 1억원을
가져가면서 고맙다는 말은커녕
전 남편 조성민
"그 많은 돈 중에 고작 1억! 이제 당신에게 돈얘기 또 안 해"
하며 퉁명스럽게 애기했던 것입니다. 그에겐 고작 1억인지 모르지만 제가 건네준 그 돈은
둘째 아이 수민이(준희)를 임신한 상태에서 밤을 새워가며 CF출연료로 받은 돈이었기 때문에,
그 서운함은 더욱 컸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남편뿐 아니라 그 여자(내연녀 심마담)의 진술서를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또 다른 분노를 느껴봤습니다. 소송은 정말 더 이상 사생활 침해를 받지 않고 전남편과
그 여자가 더 이상 거짓말로 일관된 인터뷰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했던 것인데,
이제는 제가 이들을 쉽게 용서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온갖 거짓말로 일관하며 수많은 사람을 속였던 그들은 이제는 한 치의 거짓이 있으면
안 되는 법의 기관을 통해서도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과연 이들은 죄값을 어떻게 치를지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과연 저에게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혼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라고 생각하는 전남편은 두 아이의 존재를 잊은 것일까요.
이제 두 아이는 '저만의 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를 위해서 아빠 몫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특히 아들 환희는 어느 정도 제 말뜻을 알아듣습니다.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올바른 것만 보여주고 일러줘야 하는데, 그동안 그렇게 못했던 것이 가슴이 아프네요.
이제는 아빠 없이도 꿋꿋하게 잘 키워 나가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전남편은 아직도
아빠로서 아이들을 보러 올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것도 전 거부하고 싶습니다.
둘째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경솔한 말을 할 때부터 그는 아이들 아빠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껏 몇 번의 방문을 통해 전남편은
아이들 분유 한 통 사온 적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찌 아빠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혼 후, 최진실이 사망하고 나서도,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양육비를 지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최진실 자녀들은 굳이 아버지의 경제 지원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로서 최소한의 성의를 표하지 않았다.
최진실은 사망 직전 김재우 기자와 마지막 통화(10월2일 0시 47분 마지막 통화)
마지막 유언
"아무리 친권을 포기했어도 어떻게 한 번을 안 올 수 있을까..."
그녀는 자살하기 이틀 전 죽으면 어쩔 수 없이 두 아이의 친권이 아버지에게 갈 수 있다는
말에 상당히 놀라워하고 흥분했다.
최진실
"이혼 당시 친권을 포기한 이유는 내가 대신 빚(대출과 어머니, 동생 최진영의 돈까지)을
갚는 조건이었는데, 그 증거가 지금 고스란히 있는데 그게 말이 되냐.
정말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네, 너 아니면 환희, 준희 지켜줄 수 없으니 꼭 최진영 곁에서 돕고 지켜봐줘야 해.
6년간 힘들었던 부분 자료가 너에게 다 있으니 꼭 도와줘라, 혹시나 잘못되면 꼭 공개해 밝혀달라.
누나가 뭐 때문에 힘든지 처음부터 봐서 알잖아. 그리고 내가 왜 이러는지 알잖아.
그 진실을....그 진실을...(밝혀줘). 재우야, 믿는다. 미안하다. 너 내 동생 맞지?"
2008년 9월 여론조작이 심각하게 진행될 때
“나는 외톨이…, 왕따…, 도무지 숨쉴 수가 없다. 사채니 뭐니 나와는 상관이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왜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꿋꿋하게 극복하겠다”
다양한 상념의 메모를 남기고 삶에 대한 애착도 드러낸다.
최진실은 월간 잡지 <퀸>의 기자 김재우 편집장에게
“오늘은 '최진실 안티 사이트'에 들어가 봤어. 이들은 왜 나를 싫어하는 걸까, 알아보기 위해서였어.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싶어. 최진실이라는 사람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웃집 사람 같은
편안함 때문이었는데, 어느 순간 톱스타라는 칭호가 따르게 되고, 자신들과 다른 이질감을 느껴서가 아닌가 싶어.
그 어떤 배신감 같은 거라고 나 스스로 정의를 내려봤어. 인기를 얻고 돈을 벌고 그들과 다른 삶을 산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내 성격이나 취향이 달라진 게 아닌데…. 난 명품도 안 좋아하고, 아직도 수제비와 분식이 좋은데,
왜 그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날 평가하고 그렇게 믿는 걸까? '안티팬들과의 만남', 뭐 이런 거라도 해서 해명을 해야 하나?
그러면 세상은 또 뭐라 할까…? 나 언제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거니? 그냥 은퇴를 하는 게 옳을까?
은퇴를 한다고 해서 나에게 주던 시선을 거두기나 할까?” “이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 때 들었던 말들이 더 힘들 수도 있는데, 왜 지금 마음은 그 때보다 더 힘들까?
정확하게 말하면 조성민의 이혼과정. 조성민이 피해자 코스프레하며 이혼하고 싶다고 언론에
떠들고 다녔기 때문, 2002년 12월 18일부터 2004년 8월 31일까지 대중은 조성민의 간통, 폭행,
사기, 중상모략, 사문서 불법 유출 등의 범죄 행각을 확인.
처음에는 사채업자란 소리에 웃음이 났는데, 그냥 웃을 수가 없었어. 가까운 사람들조차 조금은 연관된 게 아닌가
싶은 눈빛을 보내는 거야. 난 그저 친한 동생(정선희)의 아픔에 손이라도 먼저 잡아주기 위해 달려간 것뿐인데,
그래서 발인 때까지 함께 있어준 것인데, 세상은 어쩌면 내 진실과 다르게 매번 나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니?
이젠 더 이상 내가 설 수 없을 것 같아. 이걸 또 이겨내면, 또 다른 일에서 난 사채업자에서 포주로 불릴지도 몰라.”
“이제와서 내 이미지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니. 벌써 이런저런 일로 내 사생활은 세상에 모두 알려져,
늘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대중 앞에 놓였던 사람인데. 난 이제 예쁜 척도 고상한 척도 못해.
2005년 10월 연예기획사 '싸이더스HQ' 본부장 박성혜가 최진실을 두고 '고상하지 못하다'고 떠들고 다닌 게 있다.
박성혜는 연예인이 범죄피해자일 때 범인 편에 서서 일을 한다는 의미다. "성혜야 범죄피해자가 왜 고상하지 못하지?
그럼 범인이 고상하다는 거니?" 이런 후려침이 가능한 행태다. 박성혜나 박성혜의 이런 범죄적 언사를 그대로
기사에 실은 김갑식이나 범죄자 조성민 수족 역할 잘 하고 있다. 너희들의 행태는 영원히 박제되는 거야.
참고로 이 사이더스 hq 창립맴버였던 박성혜는 그뒤 2023년 현재 키이스트 공동대표로 잘먹고 잘살고있다
근데 우리 환희가 올해 초등학생이 됐잖니.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달리 그 나이엔 인터넷 검색은
다 기본으로 한다는데, 그 어린 아이들이 우리 환희에게 어떤 말이나 시선을 보내면 어떻게 하니?
엄마 때문에 우리 환희가 마음의 상처라도 받으면 얼마나 세상 살아가는 데 위축이 되겠니.
그 생각만 하면 빨리 범인이 잡혀 이 억울한 마음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야 하는데.
정말 조바심 나 미치겠어.” “범인한테서 전화가 왔어. 너무 소름이 끼쳐. 무슨 공포 영화 찍는 줄 알았어.
어떻게 번호를 알고 전화를 했지? 형사한테도 전화가 왔는데, 번호를 알려준 것 같은 눈치는 아니던데,
정말 그 사람 목소리 무서워서 혼났어. 그 사람 무슨 대단한 위력이 있는 거 아냐? 나이도 어린데,
힘 있는 집 딸인가? 어떻게 번호를 알았냐고 물었는데, 그냥 말을 흐리더라고. '그냥 무조건 용서해달라'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해오는 거야. 물론 중간에 흐느끼기도 했던 것 같은데, 어딘가 모르게 가식처럼 느껴졌어.
그렇다고 내 입장에서 막 욕을 해댈 수도 없는 거잖아. 또 '욕쟁이 최진실'로 글을 올릴까봐.
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데, 안 나오더라. 그러면서 어느 순간에는 너무도 비굴하게 타이르게 되더라.
왜 그랬냐고 물으니 '무조건 미안하다, 한 번만 봐달라'라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옳아?”
“사채설 유포자의 일방적인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왔어. 전화가 올 때마다 '악마의 전화'가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런데 또 무슨 말을 할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짜 범인을 알려줄지도
몰라서 전화를 받았어. 그러나 전화를 받으면서도 어린 사람에게 매번 우롱당하는 기분이었어.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사람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기분이었어.” “사채설 유포자가 잡혔는데,
세상은 여전히 나를 안 믿는 사람이 많구나. 죽으면 내 진실을 믿어줄까? 내 이름은 '최진실'인데,
인터넷 속 사람들은 나를 '최가식'이라고 부르네.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않니? 환희, 준희에게 미안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어머니보단 죽어서 진실이 밝혀진 어머니가 낫지 않을까?
10월 3일이 환희 운동회 날인데, '사채업자 엄마'라고 환희 친구들이 놀리면 어떻게 하니?”
“그 사람은 나에게 용서를 구하면 되지만, 세상의 수많은 오해들은 내 몫인데, 내가 어떻게 또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동안 많은 위기들을 넘겨오는데도 숨이 차올라 죽을 지경인데, 너무도 자신이 없다.
안재환의 자살에 왜 내가 연루돼 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인터넷에 '안재환, 최진실'이란 이름이
동시에 뜨는 이유를 내가 또 어떻게 넘겨야 아무렇지도 않게 웃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런데 그렇게 넘기고 웃는 게 정말 행복이고 진실일까?” 최진실은 그 전에 이미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의와
싸울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평소에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부재'에 대해 자주 언급해 두었다.
2004년 드라마 '장미의 전쟁'에 출연하기 전
"저에게는 두 아이가 있고 제 이름과도 같은 '진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진실은 제가 죽어서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고,
이제는 당당히 세상과 맞서 열심히 살 것입니다."
최진실은 자신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완성시키고 싶어 했다.
"언젠가 저도 죽겠죠. 그 때 저를 위해 뜨거운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사람들이 있으면 돼요.
그럼 비교적 잘 산 거예요. 돈 많고 힘 있을 때 꽃등심 먹은 사람보다 어려울 때 같이
라면 먹어준 사람이 오래가는 법이거든요. 사람 때문에 늘 상처투성이가 되지만
새 살이 돋게 해주는 존재도 역시 사람인 것 같아요.
인생? 그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길지 않아요. 살면서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할 수 있는 거죠.
전 죽는 날까지 드라마틱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에요."
5. 최진실 사후
2008년 10월 8일 최진실 루머 최초 유포자
국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사이트를 통해 백 모 씨의 신분이 노출되면서 백 모 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네티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2008년 10월 13일, 백 모 씨는 증권회사를 사직
2009년 6월 16일
1심 법원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백 모 씨(여·25세)와 증권사 직원 백 모 씨(남·35세)에게 징역형 10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각각 선고하였다.
1심 재판부
"피고인들이 허위사실인지 몰랐고, 비방할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사건 당시 피고인들은 충분히 이 사건 내용이 허위사실임을 인지했고,
비방 목적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징역형이 확정되면 해직 대상이 되는 백 모 씨(남·35세)는 항소를 하였다.
2009년 12월 10일
2심 법원은 백 모 씨(남·35세)에게 벌금 4천만 원을 선고하였다.
항소심 최완주 부장판사
'충격적인 사실! 최진실, 안재환 사채 관련 의혹'이라는 제목의 쪽지를 인터넷 메신저로
100여 명에게 유포한 백 모 씨(남·35세)에게 벌금형에 그친 선고를 한 이유에 대해
"최진실 씨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을 확인 없이 재전송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
백 씨가 깊이 반성한다. 쪽지를 최초에 작성한 사람이 밝혀지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확대된 점 등에서
최진실 씨에 대한 명예훼손 외에 최진실 씨의 자살에 대한 결과까지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외국 언론 (뉴욕 타임즈, AP통신, UPI, BBC, LA타임스, 가디언 )
최진실의 사망 소식은 외국에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미국,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인도,
독일,싱가포르 등은 최진실의 사망을 비중있게 다뤘다.
미국의 유력 언론들도 최진실의 사망 소식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도
최진실의 사망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악플과 루머를 주요 사망 원인으로 보도하던 한국 언론과는
달리 당시 한국의 보수적인 사회 문화를 꼬집기도 하였다.
2008년 10월 7일(한국시각)
타임은 《South Koreans Are Shaken by a Cerebrity Suicide
(스타의 자살에 한국인들이 흔들리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진실이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최진실의 자살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후폭풍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진실은 '한국의 줄리아 로버츠',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국민적인 배우이다.
한국은 정서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사회이고 정보기술적으로는 능숙한 사회이다.
최진실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국 여성이 맞닥뜨릴 수 있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대표적으로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강한 여성을 좋아하지 않고 싱글맘은 인격 장애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최진실은 2004년 이혼을 했고 싱글맘이었는데, 한국에서 금기시되는 이혼모에 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으며 싱글맘이 환영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를 바꿔보기 위해 노력했다.
최진실은 자살한 동료 배우와 관련된 악성 루머 때문에 힘들어 했고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지만,
한국 사회에서 사회생활하는 여성의 경우, ‘싱글이고 이혼모’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
'괄시받는 계층(pariah status)'으로 여겨져 사회활동에 불이익을 받는데, 최진실은 이러한 것들로도
고초를 겪어왔다. 최진실의 죽음이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혼모로 살아간 최진실의 고통을 언급하는 데는 거의 없었다. 외신의 언급대로라면 결국
최진실의 '너무도 당당한 삶'이 못마땅한 자들이 최진실을 계속 범죄자로 음해한 것이다.
최진실은 '너무도 당당한 이혼'으로 한국 사회의 '정상가족 신화'를 박살내게 되고
한국 사회의 기득권자들은 '정상가족 신화'를 지키기 위해 그런 최진실을 제거해야 했던 상황.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최진실을 '살인교사범', '유책배우자', '악덕 사채업자'로 만들어야 했고
그걸 간파한 최진실은 그 다음은 '포주'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살인교사범(1994년에 시작) → 유책배우자(2002년에 시작) → 악덕 사채업자(2008년에 시작) → 포주(?)
즉 한국 사회는 '당당한' 최진실에게는 엄청나게 환호했지만 기득권의 핵을 깨버리는
'너무도 당당한' 최진실은 두려워 했다는 의미다.
최진실은 1993년 주병진이 진행하는 토크쇼 '주병진쇼'에 출연했을 때 자신은 여성 팬이
더 많다고 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2008년 11월에 청룡영화상에서 '명예 인기 스타상'을 받게 되고 영화 '남부군'에 같이 출연한
배우 안성기가 대신 이 상을 수상했고,
2008년 12월 MBC 연기대상에서 '공로상'을 받게 되고
텔레비전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같이 출연한 배우 정준호가 대신 이 상을 수상했다.
5. 최진실 유골함 도난
2009년 8월
최진실의 유골함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한 남성이 최진실이 자기에게
빙의해 지금 묏자리가 답답하니 자신을 꺼내달라고 부탁해서 유골을 훔쳤다고 한다.
유골을 되찾은 후 유족들은 2009년 9월에 유해를 재안장하면서 묘원 내부에
최진실을 기념하는 공간을 꾸몄다. 참배객들이나 등산객들은 그 공간에서
최진실을 추억하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2010년 3월
남동생 최진영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으며, 최진실의 묘 옆에 안장되었다.
각자의 묘 위에는 각자의 얼굴이 담긴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두 얼굴은 서로 바라보며 웃고 있다.
2011년 6월 최진실 엄마 에세이 출간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어머니 정옥숙이 생전에 거짓 소문에 시달린 딸과 아들을 위해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하게 되는데, 이 에세이에는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의 어린 시절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생애가 개괄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2013년 9월 9일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최진실의 사망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 보도 행태가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2013년 11월 17일 방영된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 '연예가 5대 사건' 중 '최진실의 사망'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최진실의 죽음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2019년 1월 25일 KBS 2TV '연예가 중계'
조사 '한국인이 그리워하는 연예인' 1위를 차지했다.
6. 친족법 개정
최진실은 2004년 9월 1일 당일치기 이혼 시 단독 친권을 가졌다.
이 때 조성민이 작성한 친권포기각서도 수령한다.
2008년 10월 시점
이혼 등의 사유로 단독 친권을 얻은 사람이 사망할 경우 생존 부모에게 친권을 주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단독 친권자가 사망하면 생존 부모의 친권이 자동으로 부활한다는
법 조항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2004년 9월 1일
이래로 조성민은 최진실의 두 자녀에 대해 면접교섭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2008년 10월호 월간 잡지에서 본인이 직접 면접교섭의무를 이행해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인터뷰한 게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최진실 사망 직후 태세전환해 생뚱맞게 최진실 자녀 재산 관리에 참견하겠다고 나선다.
조성민은 간통, 사기, 중상모략, 사문서 불법 유출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전과도 있었고 가정폭력,
중상모략과 관련해 최환희, 최준희도 직접적 피해자였기 때문에 친권을 요구할 자격이 없었고,
대중은 조성민의 행태에 분노했다. 그러면서 이런 반인권적 행태를 법으로 규제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2008년 11월 15일 조성민 친권 회복 반대
인터넷상에 '조성민 친권 반대 카페'가 개설이 돼 회원들은 서울 여의도에서
조성민의 '친권법' 개정을 촉구하는 '카네이션 집회'를 열었다.
인터넷상에 '한부모 진실방'이 개설되고 2008년 11월 21일 국회의원 김상희,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아이들의 법적 권리를 위한 실천 모임'도
결성돼 서명 운동을 펼치고 여러 유명인사가 동석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방송인 허수경, 배우 권해효, 코미디언 이영자, 배우 박철민, 배우 신애라, 방송인 서세원-서정희 부부,
만화가 박재동, 제3대 여성부 장관 장하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등이 참여 여성학자 오한숙희, 변호사 원민경,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신의진,
'진실한 아버지 카페' 운영자 오성근, 오다향 등이 참석
2011년 친족법 개정
단독 친권자 사망시 생존 부모 친권 부활과 관련하여 생존 부모에 대해 가정법원이
자격 심사를 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법률은 2013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8. 살아 생전 기레기 새끼들의 밥이 된 최진실 (황색언론의 밥)
최진실은 거의 데뷔 하자마자 어린 나이에 인기 원탑을 찍고 국민배우로서 최정상의 지위에서
롱런하던 연예인이라 황색언론의 밥이자 기자들에게 많이 시달린 연예인중에 한명이다.
당시에 최고의 지위에서 국민가수라 일컫던 가왕 조용필, 가수 이미자와 국민배우라 일컫던
배우 안성기, 최불암, 김혜자 등은 이미 연차가 오래된 중년 가수, 중년 배우이었지만,
최진실은 이들보다 한참 어린 나이, 흙수저·고졸 출신의 서민 이미지와 작고 귀여운 요정
이미지로 최진실을 만만하게 보던 기자들이 있었다.
당시 연예계는 학력 중심으로 학력위조가 허다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기레기들과 미디어 언론은 모든 연예인들에게 악질이었지만,
특히 최진실을 신문 1면에 헤드라인에 걸면 국민들이 궁금증으로 신문을 사들이기 때문에
최진실로 언론 플레이를 하거나 소설을 쓰며 루머를 퍼트리거나 과장되고 자극적인
기사들로 최진실을 괴롭혔다. 최진실은 키우는 강아지의 종류나 위경련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소한 일상들까지 신문에 실렸다.
최진실이 유독 터무니없는 루머들이 많았던 이유
예를 들면, 1면에 '최진실이 호텔을 자주 드나든다'는 타이틀을 걸어둬서 신문을 사들이게 하고
막상 내용을 까보면 '최진실이 호텔안 헬스장을 자주 드나든다'는 내용처럼 말이다.
변진섭과의 열애
기자들의 루머에서 비롯되었다.
변진섭과의 열애설은 최진실이 자서전에서 직접 언급한바가 있다.
1989년 변진섭이 진행하던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처음 인사를
나누었는데 당시 변진섭은 인기 최고 절정인 시기였고 최진실은 CF스타로 막 이름 알리고
주목받던 햇병아리였던 때였다. 최진실은 라디오 게스트로 몇 번 출연하며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가수 김혜림, 개그맨 이휘재 등과 함께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한번은 변진섭 매니저의 집들이에 매니저 배병수, 가수 변진섭, 강수지, 김혜림, 원미연, 홍서범 등과 함께
초대받아 갔었는데 이 일로 최진실이 변진섭의 집에 드나든다는 소문으로 번졌다.
이 때 최진실은 변진섭의 콘서트에 초대받았고 '사랑 나누기 최진실 콘서트'에 변진섭이 출연한 것에
대한 답례 형식으로 최진실이 콘서트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개그맨 이휘재가 무대에 오르더니
"지금 이 자리에는 변진섭씨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리하고 있다"
면서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최진실을 소개했다.
최진실(얼떨결에)
"저희 오빠의 콘서트에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관객들에게 인사했는데 다음날 '최진실, 변진섭 내년 9월 결혼,
콘서트에서 공개선언' 이라는 타이틀 기사가 나갔다고 한다.
1991년 최진실이 출연한 다큐 '인간시대-최진실의 진실'
초등학생 팬들이 최진실에게 싸인을 요청하며 "변진섭 오빠하고 약혼 진짜예요?"라고
장난스레 물어보고 최진실은 "아니라고 그랬잖아~!"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에 최진실과 변진섭은 루머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서 의견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번은 마침 둘다 MBC 방송국에 볼 일이 있어 잠깐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이것이 파파라치에게
찍혀 또다시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라고 잡지에 실렸다고 한다.
최진실과 변진섭은 해명을 하기 위해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정이 들었고
두 사람은 "이런 것이 사랑인가?" 하는 감정이 들어 '결혼'이라는 단어를 기정사실로 인정해가며
공개적으로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우애를 나눴다. 루머가 어느새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항간에는 양가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약혼반지를 교환했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어느날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는 최진실을 보며 어머니가 "네가 좋으면 결혼하라"라고
말했지만 최진실은 그 시점에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결혼이 아니라 상황에 떠밀려서 하는
결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결론을 내려 변진섭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1995년 말에 변진섭과의 공식 결별 기사가 나왔다.
이병헌과의 열애설
기자들의 설레발과 소설로 이루어진 경우이다.
2002년 12월 조성민의 파경 기자회견으로 매일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 때문에
자녀들과 1년동안 집 밖에 나가지 못했으며 둘째 또한 첫째를 낳았던 병원에서 낳으려고 했지만
기자들이 출산 며칠 전부터 그 병원에 몰려가 있어 결국 다른 병원으로 가서 거의 숨어서 낳았고
파파라치들과 기자들이 꾸준히 따라다녔다고 한다.
자녀들과 해외여행을 할 때는 공항에서 최대한 사람들 눈에 안 띄는 맨 구석에 자리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2008년 10월 장례식장에서 언론들의 도가 넘는 취재 행태가 도마에 오르며 또 한 번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장례식에 참석한 유명인들에게 '심정이 어떠한가' 라는 넌씨눈스러운 질문은 기본에다가,
오열하다 못해 실신하는 모습을 그대로 연예신문 1면에 때려박는 등 몰상식한 취재 행태로 인해
취재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 때 여론의 뭇매를 워낙 세게 맞았던 탓인지,
이후 연예인의 장례식 모습은 직접 카메라를 들이밀거나 심경을 묻는 게 아닌 멀리서
참석하는 모습만 찍는 식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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