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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진실 악의적인 루머 유포 '매니저 배병수 사망사건'

by 내일은 미스터트롯 2023. 9. 5.

배우 최진실의 매니저였던 배병수 사망사건 또한 관련루머 인해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

아직도 이 루머를 믿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그 사건을 재 조명 해 보자.  

 

최진실

1. 배우 최진실 루머의 시작  

최진실은 살아 생전 화재, 교통사고, 납치, 폭행, 강도, 스토킹 등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 것은 20년 동안 이어진 허위사실유포였고

성병감염설 유포나 합성누드사진 유포 같은 건 애교 수준이다.

여론조작은 지층이 쌓여가듯 쌓여갔다.

 

최진실의 활동경력만큼이나 악의적인 루머 유포도 매우 오래 전부터 이어진 편이다.

데뷔하자마자 연예계 정상을 찍은 케이스라 데뷔 때부터 악성 루머의 대상이었다.

연예인한테 까불고 싶은 기자, 경쟁관계인 연예인·매니지먼트사, 잘나가는 연예인을

질투하는 일반인 등이 악성 루머 생산자 후보들.

가짜 뉴스 생산 시스템은 인터넷 기술과 만나면서 전환기를 맞게 된다.

 

우리들의 천국 최진실
우리들의 천국 최진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초기 온라인 모욕죄의 개념조차 희미하던 PC통신 시절

'최진실한테 고소 당했다, 어떻게 유명 연예인이 나 같은 일반인을 고소하냐'며

징징대는 글이 나우누리 같은 곳에 당당하게 올라왔을 정도로 상황이 급변한다.

 

1999년 3월

김대중 정부가 정보 인프라 기본 계획을 발표하고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을

전국적으로 구축하면서 한국 인터넷 발달은 2000년대에 세계적 수준이 되고

악성 루머 유포도 더 극성을 부리게 된다. 바야흐로 월드 와이드 웹 시대 도래.

그 직격탄을 연예인 선두에 섰던 최진실이 맞는다.

 

2008년 2월 9일 OBS '더 인터뷰'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하듯 , 데뷔 때 인터넷이 나왔다면 바로

'축 사망'이었을 거라고 말하며 인터넷이 살인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세상에 대한 모든 신뢰를 잃는 경험을 크게 세 번 한다.

여론조작이 크게 세 번 작동되었다는 뜻이다.

세 번째 여론조작에서 더 못버티고 쓰러진다.

안재환 사망 관련 허위사실유포는 사망의 결정타였다.

https://mr-trot-tv.tistory.com/entry/%EB%B0%B0%EC%9A%B0-%EC%B5%9C%EC%A7%84%EC%8B%A4-%EC%82%AC%EB%A7%9D-%EC%82%AC%EA%B1%B4

 

배우 최진실 사망 사건 '사채업자라는 루머와 진실'

2008년 10월 2일, 배우 최진실이 사망하게 되면서 , 국민 여배우이자 슈퍼스타라 일컫던 최진실의 자살은 대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거의 국민장을 치루는 분위기였다.) 여파가 워낙 컸던지

mr-trot-tv.tistory.com

 

최진실 매니저였던 배병수
최진실 매니저였던 배병수

2.  배병수 사망 관련 거짓 소문

최진실은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배병수를 매니저로 두었다.

1994년 12월 전용철과 김영민이 배병수를 살해했다.

 

최진실이 '살인을 사주했다'는 루머

최진실이 배병수를 매니저로 둔 시절에 전용철이 최진실의 로드매니저를 담당한 바 있었고

이걸 빌미 삼아 최진실이 이 살인 사건의 교사범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퍼졌다.

 

 

배병수가 엄정화, 최진실 등을 노리개로 삼았고 어머니까지 건드리며 섹스비디오를

가지고 협박하자 매니저에게 살인교사를 했다는 내용으로, 아직도 이런 루머를 믿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 이와 별개로 배병수의 갑질이 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구봉숙의 노래 '한국을 조진 100인의 개새끼들'이라는 노래에서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매니저 배병수와 배우 최진실
매니저 배병수와 배우 최진실

2002년 10월 19일

김구라 등이 '한국을 조진 100인의 개새끼들'을 불러 이 소문의 확대 재생산에 크게 역할을 했다.

김구라는 한국을 조진 100인의 개새끼들을 불러 최진실을 살인교사범으로 모함한다.

연예계 5년 선배이자 연예계 거물인 최진실을 죽여보자고 작정하고 달려든 것.

전용철과 김영민이 무기수로 복역하는 와중에 감히 이런 짓을 했다는 건 배후가 의심되는 대목.

 

배병수
배병수

3.  배병수 사망 사건 개요 

1994년 12월 11일

에 벌어진 연예계 전문 매니저 1세대였던 배병수가 자신의 부하직원이자

당시 최진실의 로드매니저였던 전용철과 공범 김영민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형사 사건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당시 연예계 내부의 갑을관계를 최초로 대중앞에

보여준 사건 정·관계, 언론사, 방송사 인사 등 ‘절대 갑’, 연예 기획사 대표라는

‘갑’, 유명 연예인이라는  또다른 ‘갑’과 신인 연예인, 말단 로드매니저 등 ‘을’ 사이의 지배·복종 관계와

착취 구조 등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계 내부의 부조리에

대한 의혹과 설만  난무했고, 명확한 진실은 가려졌으며, 개선노력은 전무했다.

 

배병수
배병수

일단 이것을 보도하는 언론사들이 이런 갑을관계, 착취구조의 중심축이었기 때문에 대중들의

말초신경을  건드는 자극적인 보도로만 일관하는 기레기짓거리만 했다.

당장 2020년대 들어서도 방송사들은 하나같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처우개선에 대해선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1994년은 언론에 수많은 대형 살인사건들이 보도됐는데, 이 사건이 가장 마지막이었다.

지존파 사건, 온보현 사건, 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 박한상 존속살해 사건,

부산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강태민 유괴 살인 사건 등이 이 해에 일어났다.

4.  최진실 로드 매니저 전용철 

 

배병수와 인연

1992년

당시 탤런트의 꿈을 키우고 있던 전씨는 매니저 배씨를 직접 찾아가 일자리를 요청했다.

 

1993년 여름 최진실 로드 매니저 채용

에 전용철(全鎔喆)은 고졸 이후 군대를 전역하고 일 없이 지내던 와중에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MBC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야외 무대에서 배병수를 알게 되어

현장 잡일을 도와주었고 그에게 로드매니저로 채용되었는데, 그는 전용철이 체격이 왜소하고

얼굴이 곱상하며 착하고 성실해 보여 여자 연예인 로드매니저로 어울린다고 판단하고

이후 최진실의 로드매니저로 배정하지만 이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는 무한도전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 버라이어티 형식으로 변질되면서 인기가 하락하기 시작하다가 1997년에 종영된다.

 

1994년

배병수의 주선으로 정지영 감독의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전용철은 연예인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배병수가 더 이상 돌봐주지 않자

다른 탤런트의 매니저를 사칭하고 다니다 배병수에게 발각돼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배병수와 전용철 갈등 시작

로드매니저로 채용된 이후 배병수와 전용철 사이에 갈등이 시작되게 된다.

기획사 사무실에서 금품이 없어진 데 이어 설상가상으로 기획사 직원들과 그와 계약을 맺은

연예인들의 소지품에서 금품이 없어지는 일이 늘어나자 배병수는 전용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이 빈번히 일어나자 전용철을 도둑으로 몰기까지 한 데다 사소한 실수를 저질러도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배병수가 전용철을 질책하게 된다.

 

1994년 1월

이들의 불화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다가

배병수는 전용철을 해고하게 된다.

 

해고 이후

전용철은 자신을 해고한 배병수에 대해 앙심을 품기 시작했고 이 시기 최진실이 일약 스타가

되면서 배병수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졌다. 그럴 때마다 전용철은 그에 대한 복수심을 점점

더 키웠으나 전용철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었고, 로드매니저였던 시절에 벌어둔 돈을

오락과 유흥으로 탕진했으며, 돈이 떨어진 뒤에는 카드빚으로 충당하였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매니저 일을 시작하려고 연예계를 드나들다가 우연히 다시

만난 배병수로부터 '너같은 사람은 매니저 할 자격도 없다'라는

말을 듣게 되자 전용철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매니저 배병수 프로필

1994년 유명 스타들을 거느리던  매니저 배병수씨(당시 36세)

https://mr-trot-tv.tistory.com/entry/%EB%B0%B0%EB%B3%91%EC%88%98-1

 

배병수

배병수 1. 배우 최진실 , 최민수 매니저 배병수 대한민국의 前 연예계 로드 매니저. 미국에서는 해당 직업을 Publicist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매니저 외에도 아이돌 그룹들에 붙는 프로듀서가 매니

mr-trot-tv.tistory.com

 

5.  배병수 살해과정 

1994년 10월

전용철은 가진 돈도 떨어지고 천 만원이 넘는 카드 빚마저 지게 된 상황에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어느 성인 오락실에서 범행을 공모할 사람을 찾게 되는데,

때마침 절도 등 전과 5범의 김영민(金英敏, 1971년생  당시 23세)을 알게 되었고,

이들은 '돈을 벌자'는 명목으로 범행을 모의한다.

 

1994년 12월 11일 살해

전용철은 김영민에게 배병수가 돈이 많다는 점과 배병수의 내부 사정을 잘 안다는 점을

이용하였고 그의 범죄 경력까지 합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여 범행을 제안하였다.

차량과 범행 도구를 마련한 두 공범은  밤 11시, 에스페로 승용차를 지인으로부터 빌린 후

배병수의 집에 도착하였고 초인종을 눌렀으나 응답이 없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두 사람은 배병수의 집 안으로 들어가 숨어 있다가 30분 뒤 귀가한 배병수의 머리를 각목으로

내리쳐서 실신시킨 뒤 안방으로 끌고 간 다음, 결박시켜 깨운 뒤 칼로 위협하여 예금 통장과

현금카드의 위치와 비밀번호를 말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배병수가 저항하자 전용철은 그를

무자비하게 구타하였으며 결국 배병수는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두 공범은 필요한 것을 빼앗은 다음 어떤 협상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배병수를 전깃줄로 교살하였다.

자신들의 얼굴을 아는 배병수가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그에 대한 복수심도 동반하였다.

 

전용철 김영민
전용철 김영민

1994년 12월 12일 야산에 유기

두 공범은 배병수의 시신을 경기도 가평군의 야산에 유기하고 범행 증거가

남은 차량을 외진 곳에 버리고 당시로서는 신형 차량인 '브로엄'을 구입한 뒤

통장에서 배병수의 돈을 마구 인출했고 그 돈을 이용하여 술집 등 유흥업소를 전전했다.

'브로엄' 1993년 출고->아카디아의 출시로 단종->2년 후 뉴 브로엄으로 출시->1999년 단종.

 

전용철 김영민
전용철 김영민

 6. 범인 체포 과정

1994년 12월 12일(시신 유기 당일)

배병수의 가족은 그의 거처를 수소문하던 끝에 약 1주일 후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였으며, 경찰은 사건의 파장을 고려하여 수사에 임했다.

주요 수색 대상은 배병수의 집이었고 현장에는 증거 인멸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여기저기서 격투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안방에서 혈흔이

발견되면서 경찰은 실종 사건에서 강력 사건 수사에 돌입하였다.

 

 

CCTV를 활용한 수사기법이 대한민국 경찰 역사상 최초 도입

실종 당일인 12월 12일을 기점으로 서울과 부산 등에 있는 현금인출기를 이용하여 누군가

배병수의  계좌에서 총 3820만 원이라는 거액을 인출한 것이 포착되면서 서서히 수사망을 좁혔다.

현금인출기가 설치된 은행 일부에서는 은행 직원들이 두 공범의 인출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고,

일부 지급기엔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목격자들이 진술한 20대 남자의 인상 착의로 용의자의

신원을  추정해 가던 경찰은 배병수 밑에서 로드매니저로 일하다가 몇 달 전에 해고당한

전용철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경찰은 주변에 대한 탐문수사 결과 전용철이 범행 당일 브로엄

승용차를 구입하고 지인에게서 폐차 직전의 낡은 에스페로 승용차를 빌렸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전용철이 유력한 용의자임을 확인했다.

 

 

1994년 12월 23일 오후 2시 15분

충청북도 음성군의 중부고속도로 진출로에서 잠복 근무 중이던 경찰관이 범인의 차량을

발견했는데, 운전자는 검문을 위해 다가간 경찰관을 제치고 차량을 급출발했으며,

이후 2시간 동안 경찰과 추격전을 벌였다. 이 차량에는 전용철, 김영민, 2명의 젊은 여성 등 총 4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여성들은 배병수가 실종된 1994년 12월 12일 밤에 전용철과 김영민이 찾은

룸살롱 종업원들로 거액의 팁을 받고 함께 강원도의 한 스키장으로 놀러 가는 중이었다.

경찰의 추격 이후 약 2시간 뒤, 차량은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견되었지만 사람은 타고 있지 않았다.

 

그 뒤 같은날 오후 6시 40분,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전용철은 경찰에 전화해

자수 의사를 밝히고 차량을 주차한 장소에 나타나 체포되었다.

두 여성은 도주해 친지 집에 숨어 있었고 경찰은 그 집을 급습해

두 여성을 범인 은닉 및 도주 방조 혐의로 검거했다.

 

1994년 12월 24일

공범 김영민 역시 서울 서초경찰서를 찾아와 자수했다.

전용철과 김영민이 배병수를 살해한 후 암매장한 사실을 자백함으로 사건은 막을 내렸다.

 7.  이후  무기징역 

살해동기

“직접적으론 배병수에게 당한 수모를 갚자는 감정과 돈이 필요한 처지 때문이었다.

얼마 전 파티에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배씨가 내 뺨을 때린 것이

마음속에 앙금으로 남아 있었다”

 

1995년 6월

두 사람에게 각각 무기징역형이 선고되었고, 형이 너무 과하다며 이들은

항소했지만 10월 항소심에서 최종적으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되었다.

 

최진실 증언 

최진실은 법정에서 고인이 모진 행동을 하긴 했으나 살인까지 이어질 일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이후 전용철은 형이 확정되어 수감된 뒤 일부 정치인과 언론사에 지속적으로

‘이제 진실을 밝히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일부 언론사와 교도소 내 인터뷰까지 하였다.

 

 

1994년 12월

이래 8년간 여러 언론사에 '섭섭한 게 있다'는 모호한 표현이 담긴 편지만을 보낸다.

 

 

2002년 11월

기자들에게 실명을 거론하며 그 섭섭함의 실체를 교도소 내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002년 11월 18일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에서 이 문제로 소환 조사를 받기도 했다.

 

2002년 11월 24일 

전용철 전용철은 살인교사범이 따로 있다고 인터뷰한다.(교도소에서)

근거없는 소리일 뿐이고 전문용어로 관종짓.

 

2002년 12월 18일 

조성민은 최진실을 살인교사범으로 모는 인터뷰를 한다.

 

전용철 2008년 10월(최진실이 사망했을 때)

"진실이 누나가 이제 편히 눈감았으면 좋겠다

매스컴을 통해 진실이 누나의 유골이 새로 안치된 묘역을 봤다.

이제 어느 누구도 누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년 10월 누나의 별세 소식을 듣고 쏟아지는 눈물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유골 도난사건까지 겹쳐 너무 괴로웠는데 다행히 유골함을 훔친 범인이 잡혔고

누나의 묘역도 새로 단장돼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나가 두 아이들을 남겨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게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더 큰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매번 오뚝이처럼 일어선 누나였다

그럴 자격은 없지만 누나를 한번도 원망하고 미워한 적이 없었다, 이곳에서 진심으로 누나가

잘 되길 빌었고 언젠가 꼭 한번 만나서 그간 못 다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세상이 너무 힘들어서 떠난 누나에게,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누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전용철은 최진실의 로드 매니저로 일할 때 바빴지만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2009년 10월 6일

김범석은 살인범 전용철이 죽은 최진실한테 편지 썼다고 떠들면서

'최진실 살인교사범 만들기' 프레임 거는 모양새이나 살인범 전용철과의 친분만 들킨다.

 

 

2013년 12월 20일

정원수 한명구는 살인범 전용철의 '근거없는 살인교사 타령'을 소재로 영화 만든다고 헛힘 쓴다.

정원수는 배병수 살인 사건에 최진실을 쓸데없이 언급하며 '최진실 살인교사범 만들기' 프레임

거는 모양새이나 살인범 전용철이랑 한패라는 광고일 뿐.

전용철은 원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전용철(재심)

"어머니 환갑이 다가오자 겁이 났다. 이러다가 어머니 생전에 한 번도 어머니 곁을

지켜드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하던 분식집(사건 당시 포장마차로 보도됨)을

내 변호사비로 날리고 지금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어린 여동생과 어머니는 힘들게 살아왔다."

 

2022년

전용철은 원주교도소에서 복역한 지난 13년 동안 건축기능사 자격증, CAD자격증 등

각종 자격증을 따 많은 상점을 받았다고 한다.(12개의 자격증을 취득)

2년제 전문대학인 교도소 내 교육기관에 입학, 창업경영학과 09학번으로 재학중

이후 형량이 20년으로 감형되어  현재 출소했다고 한다.

김영민은 현재까지도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전용철

"2007년 아버지가 폐암으로 별세했을 때도 교도소 사정 때문에 귀휴를 나가지 못 했다,

요즘 아버지와 누나(최진실)가 계신 곳을 찾아가 속죄하는 꿈을 자주 꾼다

출소하면 사진을 공부하고 싶고, 아버지와 최진실 누나의 묘역을 찾은 뒤 청계천과 찜질방에 가보고 싶다"

 

안타깝게도 최진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후에도 여론조작은 이어지게 된다.

이름표 달고 손 들고 나와주는 여론조작범들은 리스트를 작성하여 후손들이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도록 할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최진실
최진실

https://mr-trot-tv.tistory.com/entry/%EC%95%88%EC%9E%AC%ED%99%98

 

배우 안재환 '사채로 인한 죽음'

2008년 배우 안재환의 죽음은 한마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평소 검소한 생활로 반듯한 이미지 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지 않는 분위기를 이어가며 타살설을 주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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