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들었나 놨다 할 정도의 대단한 이슈 였던
배우 최진실과 야구선수 조성민의 첫만남에서 결혼 그리고 이혼과정을 살펴 보자.
1. 최진실 , 조성민과의 첫만남
조성민 프로필
출생 : 1973년 4월 5일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사망 : 2013년 1월 6일 (향년 39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신체 : 194cm, 110kg, A형
최진실 프로필
출생 : 1968년 12월 24일 서울특별시 은평구
사망 : 2008년 10월 2일 (향년 39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
신체 : 162cm(프로필상 키 164cm)
조성민 고등학생 시절부터 배우 최진실의 팬
실제로 그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최진실의 사진이 인쇄된 책받침과
여러 사진들을 갖고 다니며 나중에 꼭 최진실과 결혼할 거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 당시 그 결혼이 훗날의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1998년 11월
조성민은 고등학생 때부터 최진실의 팬이다. 조성민은 당돌하게도 최동철한테 직접 전화를 해
라디오 방송 출연을 자청하고 최진실도 출연하도록 해볼테니 꼭 부탁한다는 '기술'을 쓴다.
제작진은 1998년 일본 야구 리그 올스타 조성민을 섭외했고 조성민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최진실의 팬인 걸 알게 되어 만남을 추진한 것.
이 무렵에 KBS '행복 채널' 녹화가 있었기에 최진실과 안면을 튼 후 바로 이런 상황조작을 한 것으로 추정됨.
최진실은 자기 팬을 위해 영화 촬영 중 짬을 내 전화 인터뷰에 응하게 되는데 , 최진실한테 잘보이기 위해
이런 쑈를 한거다 조성민의 자기과시적 본성, 사기꾼 기질이 드러나는 에피소드 되겠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고 언론 노출을 즐기다못해 여론조작에 언론을 이용하는 건 나중에 실컷 구경하게 된다.
1998년 12월 1일 KBS '행복 채널'
최진실과 조성민이 처음 만나는 게 방송이며 최진실은 지상파 방송에서
자신의 팬 조성민을 처음 만나게 된다.
이때 당시 조성민은 무명 선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조성민을 아예 몰랐다.
이 출연을 계기로 주변에서 이것저것 듣게 되어 나름 실력도 있고 인기도 있는
선수라는 걸 알게 되며 , 최진실과 조성민은 의남매가 된다.
서로의 직업에 대해 응원해주며 우애를 나누며 조성민은 최진실의 자택에 놀러가기도 한다.
조성민이 구애하여 둘의 관계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 조성민과 최진실의 연애는
순탄치 않았는데, 나이 차이와 서로의 직업적 특성 등을 들어 조성민의 아버지와
최진실의 어머니(정옥숙) 모두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1968년생인 최진실이 조성민보다 5살이나 많았다. 당시만 해도 여성 연상의 커플은 드물었다.
최진실은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조성민은 개안 수술 행사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며 최진실의 환심을 산다. 연인 사이가 된 후에도 최진실이 싸온 도시락을
일본의 공원에서 함께 먹을 때 그 도시락을 일본인 노숙인에게 줬고 최진실은 그걸 좋게 본다.
최진실은 사람을 볼 때 착한 마음씨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
조성민은 최진실에게 미국 구단 입단 포부를 밝혔다.
이 무렵에 박찬호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이라 미국 야구 리그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박찬호는 1997년 신문지상에서 성공한 유명인으로 최진실과 함께 언급되기도 했었다.
미국은 커녕 일본 구단과의 계약 기간도 다 못채우고 야구판에서 나오는 걸 나중에 보게 됨.
1998년 12월 30일 최진실은 납치 미수 사건을 겪는다.
1999년 2월(만난지 2달 후 조성민은 최진실에게 청혼한다)
조성민은 다섯 살 연상 최진실에게 청혼한다. 7년 동안 최진실을 짝사랑했다고 고백한다.
7년 전에 조성민은 최진실을 직접 본 적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최진실 브로마이드로
방을 도배를 했다고 하니 최진실 팬싸인회나 공개 방송 같은 데 찾아가거나 했을 거다.
7년 전이라면 최진실이 한국시리즈에서 시구한 해이기도 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괌 전지 훈련지 주소와 전화번호를 최진실에게 알려준다.
최진실은 괌으로 놀러감으로써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일본 진출에 관심을 가지던 때이기도
하여 최진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일본에 놀러간다.
선견지명을 발휘한 어머니 정옥숙은 최진실의 인생에 조성민이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했고 점쟁이도 찾아가는 등 심란한 마음을 드러낸다.
조주형(조성민 아버지)도 이 결혼에 난색을 표하고 , 최진실도 정옥숙의 생각을 받아들여
관계를 곧 중단하고 아쉬울 게 없는 최진실은 조성민을 끊어 내버린다.
조성민 일본에서 자살쇼
최진실과의 결혼이 성사되기 어려워 보이자 자살을 시도하고 ,조성민의 당시 매니저 손덕기는
구급차 안에서 최진실의 자택에 전화를 걸어 정옥숙과 통화한다.
조성민 자살 미수 사건에 대해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측은 모르고 지나간다.
이 사건은 조성민의 캐릭터상 조성민과 매니저의 '짜고 치는 고스톱' 가능성 없지는 않다.
정옥숙이나 최진실이 일본 의사와 대화를 나누었을 리 만무하고 매니저의 전언뿐이라 그런 의심이 가능타.
조성민의 매니저가 조성민과 관계가 중단된 최진실의 자택에 굳이 전화를 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 죽었으면 몸조리하고 제 갈 길 가면 되었기에.
2000년 7월 최진실 조성민과 약혼
결국 양가의 허락을 받아내어 최진실은 조성민을 불쌍하게 여기고 남편 역할을 맡겨보기로 한다.
정옥숙은 유영숙으로부터도 결혼허락해줍사하는 전화를 받는다.
연예 기자들의 관심이 폭발적이라 귀찮은 일들이 이어지고 기자회견으로 이를 정리한다.
연예 기자들에게 연애는 핫 아이템이었고 그것도 최고 인기인 최진실이 연애를 한다니 미친듯이 달려든다.
1990년대 전반기 두 살 연상 변진섭과의 열애설
1992년 6월 변진섭과 약혼했다는 가짜뉴스가 나올 정도.
그 와중에 죽은거나 다름없던 아버지 최국현도 변진섭과 결혼한다면서
왜 자기한테 연락 안했냐고 들이대며 돈 달라고 생떼를 쓰기도 했다.
변진섭과의 연애도 연애설 발생 후에 그걸 같이 처리해보자고 자꾸 만나다가 연애로 이어진듯.
1995년경 변진섭과 연애 종료 후에도 변진섭과 친구로 잘 지내게 된다.
최진실과 변진섭은 서로의 직업을 응원해주며 우애를 나누게 되지만 연예 기자들이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의남매로 우애를 계속 이어나가지 못하고 결국 거리를 두는 사이가 되게 된다.
나중에 MBC '내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배우와 OST 가수로 조우하게 된다.
최국현(최진실 아버지)
정옥숙이 포장마차 운영할 때 돈 뜯어간 전적을 볼 때 그러고도 남는다.
하는 짓이 말썽부리겠기에 최진실은 최국현에게 '개뼈다귀 물려주기 스킬'을 발휘한다.
그 덕에 최진실 명예를 훼손하는 짓은 크게 하진 않는다.
최진실 흠집내고 싶은 연예 기자들은 최국현 가지고 재미보려고 하나 크게 먹히진 않는다.
최진실이 일찌감치 아버지 최국현을 띄워 미리미리 리스크 관리 해두기도 했고.
정옥숙이 1998년에 이혼하도록 한 것도 리스크 관리일 수 있는 게 최진실 성공 직후가 아니라
10년 후라서 연예 기자들이 어머니 정옥숙의 이혼에 크게 신경 안썼다.
1995년 이병헌 최진실 열애설
연예 기자들은 두 살 연하 이병헌과의 연애설을 뿌리면서도 난리를 친다.
이병헌은 최진영의 친구였고 1994년 군에 입대한 최진영은 SBS '사랑의 향기'에
최진실과 같이 출연하는 이병헌에게 자기 대신 누나한테 잘해주라고 부탁하기도 하는데
2007년 '무릎팍도사'에서 최진실이 한 말로 추정컨대 이병헌과 연애했을 가능성 농후하다.
이병헌과는 1995년 SBS '아스팔트 사나이', 영화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에도 같이 출연한다.
이병헌과의 연애도 연애설 발생 후에 서먹하게 지내다가 이루어졌을 가능성 큼.
정작 이병헌과의 연애 여부는 관심의 대상에서 밀려나 있었음.
연애설 당시에는 부인했으나 연예 기자들은 집요하게 물어제낌.
1996년에는 이병헌과 연애 중이었던 것으로 추정.
이병헌 건 이후에도 일반인과 연애가 있었고 이 연애는 이영자, 홍진경 정도만 알고 지나갔다.
2. 최진실 조성민 2000년 12월 5일 결혼식
만난지 4개월 후인 11월 혼인신고 하고 1개월 후인 12월 결혼식을 하게 된다.
최진실은 성당, 조주형은 야구장에서 결혼식을 하길 바란다.
조성민은 아버지 조주형에게 겨울에 얼어죽을 일 있냐며 반대한다. 최종 서울 하얏트 호텔로 결정.
야구장 결혼식이라는 허세와 최진실 돈을 탐낸 추후 행동을 보건대 '결혼 반대 어쩌구'는
조주형의 페인트모션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행사에는 1500여 명의 하객이 참석한다.
네티즌들에게 결혼식 인터넷 생중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로 연예계와 야구계 인사들이다. 취재 기자들도 300여 명이 몰린다.
행사 전 과정은 인터넷망 iMBC를 통해 3시간 동안 생방송된다.
iMBC는 2000년 3월에 설립된 MBC 자회사. 최진실은 MBC 전속배우. 네티즌 50만 명 접속.
인터넷 개인 방송은 나중에 아프리카TV나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된다.
신민섭은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못해 최진실에게 앙심을 품는다.
2001년 2월 SBS '두 남자 쇼'에 출연한다. 이 방송에서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함께 부른다.
2001년 최진실은 일본에서 거주하며 일본 생활을 몇 달 즐긴다.
1998년부터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일본어도 공부해둔 터라 일본 생활은
일본 시장 조사에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2001년 '안티최진실카페' 생성
4월 남양유업과 광고 계약을 맺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분유 가격 문제를 광고 모델한테 책임을 물은 어처구니 없는 결과다.
기자들이 모델료를 더 높게 떠들어대서 소비자들의 화를 돋운 결과가 되며 ,
최진실은 광고 계약을 없던 걸로 하고 마무리 짓는다.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이 죽을 때까지 존재했으며 조성민은 이걸 후에 잘 악용한다.
3. 최진실 아들 최환히 출산
2001년 8월 3일 아들 최환희를 낳았다.
조성민은 일본에서 입국한다. 산부인과에 연예 기자들이 몰려간다.
정옥숙(최진실 어머니)
이 시기에는 두 사람의 사이가 원만해서 조성민은 육아에 엄청난 공을 쏟았다고 하며,
3살 무렵까지 아버지, 어머니 사랑을 듬뿍 다 받았던 아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2001년 11월 최진영은 이경규가 진행하는 예능 '보고 싶다 친구야'에 김민희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한다.
이 예능은 게스트가 친구들한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방송 녹화 현장에 누가 더 많이 오도록
하는가를 겨루는 컨셉. 최진영의 친구로 이서진, 김영철, 조성민 등이 달려온다.
2002년 최진실은 한국에서 연예 활동을 한다.
최진실은 연속극 '그대를 알고부터' 종영 후를 둘째 아이 임신 시점으로 잡는다.
일본에 거주하는 조성민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한국에 온다.
그러다가 사업 시작하면서 2주에 한 번 꼴로 온다.
2002년 5월 딸 최준희 임신
최진실은 한 달 전인 4월부터 '그대를 알고부터' 출연 중이고 5개월 후인 10월에 종영한다.
뜬금없는 임신 시점과 조성민의 같잖은 입놀림으로 볼 때 스텔싱 가능성 농후.
2002년 6월 '그대를 알고부터' 시청자 게시판을 중심으로 최진실에 대한
허위사실이 유포되어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다.
2002년 7월 조성민은 사업을 시작
최진실에게 성실한 야구 선수로 어필하여 결혼한 것인데 이 신뢰가 깨지기 시작한다.
최진실은 최환희 양육, 최준희 태교, 연기로 바쁘다.
2002년 8월 3일 최환희의 돌잔치
2002년 8월 30일 조성민 빵! 팔기 시작
조성민은 목동 현대백화점 지하 매장을 임차하여 빵을 팔기 시작한다.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은 각각 1억 원씩 조성민에게 돈을 빌려 준다.
1억 원밖에 주지 않는다고 최진실한테 불평한다.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최진실은 일단 이 짓거리를 만회할 기회를 줘본다.
2002년 9월 1일
조성민은 임신부나 태아를 걱정하기보다 '하루라도 젊었을 때 일찍 낳아 빨리 키우자는 게 자신의 생각이다.
그래야 최진실도 빨리 애를 키우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황당한 말을 한다.
왜냐하면 최진실은 이미 배우 일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그대를 알고부터' 출연 중)
'시간이 남아돌아 두 나라 왔다갔다하며 빵 파는 주제에 육아나 할 것이지'라는 소리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2002년 10월
최진실은 연예인 동료들과 함께 조성민의 빵 가게 홍보를 해준다. 장사꾼으로서는 성실한지 지켜본거다.
돈 벌어 채무 변제 잘하면 최진실 재산 탐낸 짓거리 만회되는 거다.
열심히 하라는 장사는 뒷전이고 조성민은 술집마담 심미영(가칭)과 연애하느라 바쁘다.
이게 최진영, 조성미(조성민 누나)의 귀에도 들어간다. 이 짓거리 세상에 알려지면 빵은 다 판 것.
최진영 귀에까지 들어갔다면 기자들 바닥에는 이미 쫙 다 퍼졌을 것. 심미영이 흘렸을 가능성 농후.
고로 이때 이미 김대오는 조성민, 심미영과 접촉 가능.
김대오 기자
김대오는 최진실의 연애에 대해 최진실과의 친분 덕에 1등으로 기사 쓸 기회를 잡았으나
연예 기자들의 집요함에 혹은 최진실의 소탈함에 곧 다른 연예 기자들도 알게 되면서 그 기회가 사라졌었다.
이 일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언급하고 다닐 만큼 김대오의 마음 속에 앙금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 때 일 한풀이라도 하듯이 조성민과의 연애 시절 이야기 누가 궁금해 한다고 방송에 나와 신나게 한다.
최진실 대신 삐삐 들은 이야기 할 때는 조성민 성대모사까지 한다. 근데 누가 남에게 삐삐를 들려준다는 것인지,
남 삐삐 들은 걸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고 그걸 방송에 나와 떠드는 것도 상식적인 행동 아니다.
2008년 10월 1일
김대오는 최진실의 아프리카 봉사 의사에 대해 게거품 문다.
최환희, 최준희 양육 걱정하며 아프리카 봉사 의사에 초를 친다.
조성민 내연녀 심마담과 '첫만남에서 결혼까지'
2003년 3월 1일 딸 최준희 출산(조성민과 내연녀 동거중인 상태)
최준희 출산 때에도 연락을 받지 못하고 조성민은 나중에 이 사실을 전해듣는다.
최진실이 지으려고 했던 딸의 이름 '신희'에 대해
조성민이 시비를 걸어 일단 '수민' 이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한다.
2003년 최진실은 최준희를 양육하는 데 전념한다. 자녀들과 교외로 여행을 자주 간다.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2003년 3월에는 유책배우자 발언 때문에 조성민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시기의 행동은 씻을 수 없는 과오이며,
최진실의 가족들과 본인의 자식들에게도 큰 불행을 떠안겨 주게 된다.
2003년 10월 17일
최진실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영화 ‘내사랑 일진녀’의 출연진을 선발하는 오디션 자리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
조성민은 최진영, 정옥숙에게 빌린 돈도 갚지 않아 소송당한다.
조성민 수족 기자들은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인 양 몰아갔다.
대중은 조성민과 연예 언론의 악랄함에 분노했다. (송원섭 기자 새끼는 조성민의 궤변을 받아쓰기)
조성민이 최진실에게서 가져간 13억 5,000만 원
최진실 자택 시가가 16억 원 자택 담보로 4억 5,000만 원을 은행에서 빌림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각각한테 1억 원씩 빌림
최환희‧최환희 양육비는 약 2억 5,000만 원이 미지급(미성년자 기간)
소송이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니라 자격이 안 돼 못하고 합의이혼은 채무변제, 양육비 등 합의금
아까워 못하고 조성민은 '덫에 걸린 원숭이' 신세다. 최진실은 급할 게 없다.
대중도 조성민의 실체를 파악하는 시간을 갖는다.
2003년 12월 15일
최진실은 지난 일 년 동안 쌓인 쓰레기 청소에 나선다.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연예 활동 비전을 밝힌다.
그러면서 '이혼할 의사 없음'도 선포해 온오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마타도어들을 정리한다.
조성민이 소송이혼 못하는 신세라는 걸 만천하에 드러내 확인사살해 버린 거다.
같은 날 조성민은 불교 행사에 참석하며 이미지 세탁 열심이지만 8개월 후 또 폭행을 저지른다.
2004년 3월 1일 딸 최준희 돌잔치
조성민도 참석한다.
2004년 3월 20일 연속극 '장미의 전쟁'에 출연
3개월 후인 6월에 종영한다. 주철환은 최진실의 연기 활동을 공격한다.
2004년 7월 영화에 캐스팅
영화 크랭크인을 앞두고 괌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다.
잡지사와 함께 간 여행이라 월간지 '주부생활' 8월호에 여행 요모조모가 실린다.
2004년 8월 1일 새벽 3시 조성민이 별거중인 최진실 가족 폭행 사건
2004년 11월 16일 '신한'은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최진실과 조성민의 일련의 사건들로 브랜드 이미지 실추되어 '신한'은 이 공개로 피해 입었다고 주장한다.
'신한'은 광고주, 최진실은 광고 모델 관계다. 최진실은 인권변호사 강지원을 찾는다.
그런데 소송 이후에도 최진실이 모델로 등장하는 홍보물을 계속 사용하는 신한건설의
이중 행동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었다.
2005년 9월 23일 신한이 일부 승소
2006년 5월 2일 신한이 패소
2008년 5월 최진실은 딸의 이름을 '준희'로 개명
아들과 딸에게 자기 성을 준다.
4. 기자들의 도덕적 문제
2007년 9월 18일 최진실, 최진영에 대한 여론조작질이 기자들에 의해 또 가동된다.
김대오 기자의 이상한 짓
안재환과 김대오는 2008년 8월까지 같이 방송한 사이였고.
(왜 최진실과 안재환을 엮으려고 애쓴건지?)
최진실에게 안재환 이상해 보이니 챙기라고 한다.(친구 배우자를 왜 챙겨야 하는데?)
김대오의 이 행각 며칠 후 안재환이 사망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안재환은 사채에 치여 살고 있었던 거고 안재환에게 사채를 빌려 준 자가
심미영의 술집에서 도박 및 사채 제공 혐의로 구속됨.
2008년 9월 8일
김대오 기자 시신안치소에 최진실을 데리고 간다.(최진실이 아내가 아닌데 왜?)
오대일 기자 빈소가 아닌 시신 안치소 앞에서 주저앉은 최진실의 모습을 찍는다.
2008년 10월 조성민의 9월 잡지 인터뷰
제 버릇 개 못주고 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며 호도한다.
최환희, 최준희한테 면접 교섭 의무 불이행한 것도 최진실 탓이라며
쭉 면접 교섭 의무 불이행할 거라고 제 얼굴에 침 오지게 뱉는다.
최환희, 최준희의 권리를 침해하는 글이 널리 퍼져 나간다.
보통 9월말에 10월호 잡지가 나온다. 최진실은 최환희와 최준희한테 까분 조성민을 혼낸다.
혼낸 사실을 김재우에게 말해 둔다. 최진실 사망 후 조성민이 최환희‧최준희 재산에 집착할 때
김재우를 통해 이 카드가 쓰인다. 죽은 최진실이 산 조성민 싸다구를 날린 거다.
7.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조성민은 전 아내 최진실이 사망하자 시신이 발견되었던 아파트에 찾아와서 시신확인 한후 ,
그 후 삼성서울병원에서 3일 내내 빈소를 지켰고, 발인 후 안치 과정까지 동행했다.
이 시기 최진실의 장례식에 참석함으로써 대중들은 조성민에게 어느 정도 동정을 가졌다.
물론 얼마 후 친권 관련 논란으로 또 다시 부정적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만약 오지 않았다면
조성민은 더욱 더 큰 비난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이미 대중들은 세상을 떠난 최진실과 그의 가족이었던
최진영, 환희 준희, 그녀의 어머니에게 큰 걱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우울증이 조성민과의 이혼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조성민의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매우 싸늘해져 있었다.
역시나 제 버릇 개 못준 조성민은 정옥숙과 최진영을 물어뜯고 다니다, 면접 교섭 의무도
불이행한 주제에 최환희와 최준희 재산 관리에 참견하겠다고 나대다가 여론의 철퇴를 맞는다.
2008년 11월 3일
주진우는 정옥숙한테 최진실 등신 만드는 질문을 한다.
삼성, 이명박, 조용기 등의 비리 혐의를 취재해온 주진우가 한국의 거물급 연예인이 가짜뉴스 때문에
사망한 직후 유가족을 인터뷰하면서 대표적 가짜뉴스 생산자 조성민에 대해 '호감' 운운하는 질문을 한 것도
모자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걸 , 한 지면에 굳이 실었다는 사실에서 주진우의 속셈이 드러났다.
"진우야 정옥숙, 최진실, 최진영, 최환희, 최준희 다 조성민을 인간으로 안보는 입장인 거 니가 더 잘 알잖아.
너 같은 애들 엿먹이려고 그들이 조성민을 천사라고 말한들 뭐가 달라지냐.
조성민의 실체에 대해 최진실이 깔끔하게 다 정리해줬잖아. 정옥숙도 너한테 직접 말했고. 어떻게?
조성민은 임신한 최진실을 폭행했고 지가 간통남인 주제에 최진실을 간통녀로 몰고 최준희를 혼외자로 몬 애라고.
진우야 인터뷰해 오라고 조성민이 보냈니, 심마담이 보냈니? 너 술집마담들하고 친하잖아.
조성민은 백승연과 한패로 움직인 애잖아. 그걸 짚을 시간에 그러고 싶디?"
2008년 11월 19일
김태훈은 조성민, 백은영, 하은정이 작당해서 무슨 짓을 저지른지도 모르고 나댄다.
기자들의 병신짓
말년에 자신의 잘못을 어느 정도 시인하고 아버지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평판이 나아졌다.
2008년에 전처 최진실이 사망한 이후에 아이들의 친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을 야기했다.
부모가 이혼한 뒤 친권이 한쪽에게만 주어졌을 때, 친권을 가졌던 쪽이 사망한 뒤 다른 쪽이 친권을 회복하는지,
아니면 다른 쪽이 친권을 상실한 것과 같이 봐서 후견이 개시되는지는 그때까지 명문의 규정이 없었다.
결국 2011년 법이 개정되어 친권자동부활 금지 법안이 명문화되었고, 2013년부터 발효되었다.('최진실법')
이게 더 씁쓸한 게 최진실의 자살 이후 찾아온 조성민을 보고 여론은 욕하던 마음을 거두는 분위기였으며
'그래, 그래도 한때 불같이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이었는데 이런 비극이 일어났으니 마음이 안 좋겠지~' 라는
동정론까지 일었다. 어떤 신문은 따로 칼럼을 써 그를 응원할 정도로 분위기가 숙연했다.
그런데 그 직후 갑자기 재산을 노린 듯이 느닷없이 친권주장이라니. 여론은 전보다 더 악화됐고
'조문도 재산을 노리고 온 거였어?' 등등 경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성민이 친권을 갖게 될 경우 아이들이 물려받은 최진실의 재산을 조성민이 관리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여론은 급속히 악화되었고 네티즌들이 다음 아고라에서 반대 투표를 하기도 했다.
정옥숙 또한 그가 자녀들의 생일에 조차 한 번도 오지 않았다면서 반발하였다.
이에 조성민은 돈 문제에 관해서 최진실의 개인재산을 신탁재산으로 바꾸어 아이들을
위해 관리하려는 생각이었다고 해명했다.
2009년 6월
여전히 정신 못차린 조성민은 난데없이 정옥숙, 최환희, 최준희가 다니는 교회에 나타나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척 연출해대다 정옥숙의 호통을 듣는다.
어느 날은 잡지 기자를 대동하고 교회에 나타나 애들 노는 걸 배경으로 같이 노는 척
사진 찍으며 생쇼를 해서 웃음거리가 된다.
또 이 교회와 손잡고 사업한다며 광고해대 목사가 직접나서 아니라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2010년 2월 9일 신한이 일부 승소
2009년 6월 4일 박시환이 파기환송 판결 내림. '이미지 타령' 박시환은 감히 범죄 피해자한테
'이미지' 들이대는 엽기적인 일을 한 것. 최진실의 다친 얼굴이 분장이었어도,
엉망진창이 된 범죄 현장이 영화 촬영 현장이었어도, 최진실이 '괴물' 분장하고 영화에
출연한 것이었어도 같은 판결 내린다는 논리.
그걸 받아 이대경이 반헌법적 판결을 내린 것이다.
2010년 3월 29일 최진영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2010년 10월 9일
조성민은 자기는 절대 최진실을 폭행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오리발을 내밀고,
대놓고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최진실이 마치 피해를 조작했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다.
조성민은 사업한다고 나대지만 잘 안된다.
2012년 11월
조성민이 후배한테 폭행당했단다. 피해자인데 가해자로 몰렸다고 징징댔단다.
"니가 최진실한테 한 짓거리를 생각해봐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이후에는 해설위원과 두산 베어스 2군 코치 등을 역임하며 자녀들과 자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녀들은 여전히 아빠에게 어색한 감정을 가지기는 했지만, 야구장에도 같이 오고 최진실의 추모식에도
참석하는 등 아빠로서의 역할을 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망하기 3개월 전에는 아이들의 운동회
조성민(운동회에 나가서 아이들과 한 때를 보내며)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겠다"
대중들의 반응
"아이들의 아빠로서 도리를 다하고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해줘라.
그것이 당신이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대중들도 조성민에게 어느 정도 악의적인 감정을 풀려는 무드가 조성되었다.
2013년1월6일 조성민(향년 39세) 사망
연애하던 여성 집에서 사망. 근데 배우자는 심미영으로 돼 있다는데. 또 간통?
그는 전 여자친구의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사건 당시 그가 남긴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그의 죽음으로부터 1주일이 지난 1월 13일에 유서가 발견되어 그의 사망 원인은 자살로 확정되었다.
전날 그는 여자친구의 집을 방문했는데 여자친구로 부터 이별을 통보를 받게 된다.
그는 이별 통보를 받은 뒤, 전 여자친구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 같은 집에서 자살한 것이다.
조성민(죽음에 앞서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
"저도 한국에서 살 길이 없네요. 어머니한테 죄송하지만 아들 없는 걸로 치세요"
그는 유서를 통해서 유산은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겼다. 조성민까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조성민의 자녀들은 어머니 최진실, 외삼촌 최진영, 아버지 조성민과 모두 자살로 사별하게 되었다.
우연히도, 최진실,최진영 , 조성민 셋 다 향년 39세이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조성미(조성민 누나 싸이클 선수 출신)
유산이 최환희와 최준희한테 넘어갈까봐 미리 손써둔 치밀한 조성민.
그걸 합리화하는 '주부생활'에 인터뷰를 한다. 조성미는 연애 서사 어그로 끌며 조성민의 범법행위
물타는 기술도 시전한다. 근데 무슨 사달이 났는지 결국 최환희, 최준희한테 넘어감.
'피디수첩'에 나와 감히 피해자코스프레 하는 조성미. 남매가 똑같은 부류라는 거 입증.
거기다가 억울한 게 많은 조주형(아버지)은 조성민에 대해 책 쓴다고 난리. 유영숙(조성민 엄마)도 비슷한 입장.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한 짓으로 조성민 실체 다 까발려졌는데 저 집안은 단체로 저러고 놈.
그가 사망했을 때 사망 장소가 여자친구 집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그럼 두번째 아내는 어떻게 된 건지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그의 사후에 누나 조성미가 두 번째 부인과 조성민이 이미 이혼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2013년 7월 조성민 같은 위인 걸러내는 친족법이 시행
김대오는 조성민이 사망한 2013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최진실이 유책배우자인 양,
복용약 때문에 사망한 양, 기혼남 조성민과 연애하고 싶었던 양 말하고 다녔다.
김대오는 최진영에 대해서도 고소영을 폭행한 양 말하고 다녔다.
복용약 운운은 김대오, 유정환, 박상호가 세트플레이를 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 박상호는 2013년 11월에 사망하고 유정환은 2019년 10월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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