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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배우 스카이 최진영 '어린시절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by 내일은 미스터트롯 2023. 8. 31.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가수 최진영에 대해 알아보자.

배우로는 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가수로는 노래 《영원》으로 유명하다.

1990년부터 배우로 활동했고 1999년부터는 가수로도 활동했다.

처음 가수로 데뷔했을 때 배우라는 프레임 없이 대중의 평가를 받기 위해 얼굴 없는

가수로 등장하여 '스카이(SKY)'라는 예명을 썼다.

처음엔 누나 최진실의 동생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모델, 배우, 가수로

모두 잘나가  최진실 못지않게 유명해졌지만 이제는 최진실과 함께 세상을

달리 해서  추억의 스타가 됐다. 

 

최진실 최진영 남매
최진실 최진영 남매

1.  최진영 프로필 

출생 : 1970년11월 3일  서울특별시 은평구

다음, 네이버 등의 포털 사이트 프로필상에는 1971년 2월 27일로 되어 있다.

당시 높은 영아 사망률로 인한 민증상 생일로 추정 , 구글 프로필상에는 11월 17일생으로 나온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한창일 때 미니홈피에 기재된 최진영의 생년월일은 1970년 11월 17일이었고

최진영이 사망한 해에 생일을 챙긴 기사가 난 적이 있는데 , 진짜 생년월일은 11월 17일이다.

 

사망 : 2010년 3월 29일 (향년 39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묘소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갑산 공원 묘원(사망 후 누나 최진실과 합장되었다.)

 

신체  : 174cm, 60kg, B형, 265mm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이현지와의 대화 중 이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이 있다.

 

가족 : 아버지 최국현, 어머니 정옥숙 누나 최진실 조카 최환희, 최준희 6촌 최재성

학력 : 서울불광초등학교 (졸업) 대성중학교 (졸업) 숭실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데뷔 : 1990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종교 : 개신교(침례회)(사망할 당시 온 가족이 강남 중앙 침례교회에 출석하였다.)

 

최진영 최진실 어린시절 엄마와
최진영 최진실 어린시절 엄마와

2. 최진영 어린시절 

1970년 11월 3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現 은평구)에서 1녀 1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려웠던 가정 형편 탓인지 몸이 무척 약했었다고 한다.

또래보다 체구가 작은 편이라 시비도 많이 걸렸었고 복숭아, 사과, 포도 등의 과일들과

계란 등 여러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먹지 못하는 음식들도 많았다고 한다.

커 가면서 점차 괜찮아졌지만 복숭아 알레르기는 평생 가지고 있었다.

(이는 2008년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도 한 번 언급된 적이 있다.)

 

최진실 최진영 남매
최진실 최진영 남매

아버지 최국현

그의 아버지 최국현은 한량이었다. 가정을 책임질 능력은 물론 의지도 없었다.

자신에게 이미 두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옥숙에게 말하지 않은 뒤 결혼을 하였다.

최진실, 최진영 남매의 이복형제. 두 아이의 어머니도 달랐다.

훗날 이 이복형제들이 최진영의 운구를 했다.

 

툭하면 집을 나가고 종종 돌아올 때면 정옥숙의 일터를 풍비박산 내며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폭력까지 행사하였다. 최국현은 당시 남존여비가 극심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딸을 더 선호하고 편애하였다고 한다. 딸인 최진실에게만 용돈을 쥐여

주는가 하면 최진영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늘상 냉담한 태도로 일관했다.

최진영은 어려서부터 그런 아버지를 무서워함과 동시에 어머니를 폭행하고 자식들을

내팽개치던 그의 행태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를 때면 되려 자신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였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엔 어머니에게 아버지와의 이혼을 권유하였다.

여전히 바람을 피우고 돌아다니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후 정옥숙과 최국현은 1998년 이혼하였다.

 

최진영 최진실 어린시절 엄마와
최진영 최진실 어린시절 엄마와

 

비혼 선언 

그것을 보고 자란 자신도 그를 따라 할 수 있다 생각해 경각심을 갖고 살고자

비혼자 무자녀자 포지션을 견지했다.

 

최진영

"결혼은 몰라도 아이는 갖지 않겠다."

 

최진영 최진실 남매
최진영 최진실 남매

지인들에게도 언론을  통해서도 자주 말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턴 결혼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는 자세를 취했다.  사망 한 달 전쯤 급격히 무기력해하던 최진영이 걱정됐던 어머니.

 

어머니 정옥숙

"하루빨리 참한 사람과 결혼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이뤘으면 좋겠다"

 

최진영

"엄마, 나에게는 나쁜 피가 흘러.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나쁜 피. 괜한 사람 데려다가

고생시키고 싶지 않으니  나 혼자 살게 내버려 둬요."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2011. 정옥숙 지음)」 

어머니의 결혼 닦달에 대한 자식의 흔한 대답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벌였던 만행들과 누나를 비롯한 주변인들의 좋지 못한

결혼 생활 결말로 인해 결혼에 대한 회의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최진영 청소년기 

최진실 역시 아버지 최국현이 딸인 자신은 편애하면서 아들인 최진영은 괴롭힌 것을

의아해하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래도 핏줄은 핏줄인지 두 남매는 아버지를 아예 외면하진 않았다.

최진영이 중학생이던 때, 가출을 일삼던 아버지 최국현은 끝내 가족을 외면하고 아예 집을 나가 버렸다.

이로 인해 정옥숙은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게 되었는데 화장품 외판원, 포장마차 운영 등의

일을 하여 가정의 생계를 꾸려 나갔다. 경제 활동에 뛰어든 건 어머니뿐만이 아니었다.

자식인 최진실, 최진영 역시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최진영과 어머니 김옥순
최진영과 어머니 김옥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최진실은 햄버거 가게 알바를, 중학교 3학년이던 최진영은 휴학을 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였다. 그러던 중 최진영은 쇠를 깎는 기계에 다리를 크게 다쳐 일을 그만두었고

이후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6촌 형 최재성의 도움으로 교복 광고 모델이 되었다.

 

최진영 교복 광고 모델
최진영 교복 광고 모델

 

우애가 좋았던 남매 

청소년기 최진영과 최진실은 연기를 하며 놀았다.

그리고 명절 때, 친척들을 앞에 두고 평소 연습해 둔 것을 공연하곤 했다.

 

공장에서 일을 할 때에도, 교복 모델을 할 때에도 최진영은 수입이 생기면

교통비와 기숙사비 등의 최소한의 비용을 제외한 모든 돈을 가족에 가져다주었다.

어린 나이에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누나 최진실과는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서로에게 무척이나 애틋한 관계였다.

최진영에게 최진실은 누나 그 이상이었다. 집을 나간 아버지와 경제 활동으로 바쁜 어머니의

빈자리를 모두 채워 주던 부모이자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던 단짝 친구였다.

 

우애가 좋았던 남매
우애가 좋았던 남매

 

최진실은 학교에서 빵을 받으면 반 쪽은 꼭 집으로 가져와 최진영에게 주었다.

또한, 바쁜 어머니를 대신하여 중학생 시절부터 종종 스스로 밥을 차려 동생을 먹이곤 하였다.

그렇다고 최진실만 동생을 위하던 것은 아니었다. 최진영 역시 누나를 위해 많이 희생하고

누나를 살뜰히 챙겼다. 고등학생 시절, 학비를 낼 여건이 안 돼 전전긍긍하고 있는

어머니를 볼 때면 늘 본인은 괜찮으니 누나 것부터 해결하자던 동생이었고

누나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면 자신의 일보다 더 나서서 해결하고자 달려들었다.

 

최진실 최진영 남매
최진실 최진영 남매

 

그로부터 2년 뒤인 1988년, 최진실은 모델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오는 최진영을 보며 자신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작은 실랑이가 있었지만 어머니와 최진영은 결국 허락하였다.

최진영은 카메라를 구해 직접 최진실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 주고 그 사진들을 충무로

에이전시에 홍보해 주며 최진실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진실이 일을 시작한 초기에는 최진영이 그를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한다.

 

최진실 최진영 남매
최진실 최진영 남매

 

광고 에피소드 

1988년 4월에 모델 박영선이 주인공인 광고에서 뒷배경 역할을 맡게 된

최진실은 추운 날씨에 수영장에 뛰어드는 연속 촬영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되고

 

동행한 최진영(덜덜 떠는 최진실에게 수건을 덮어 주며)

"이렇게 힘든데도 계속할 거냐?  처음부터 길을 잘 들어야 한다."

최진영은 급한 마음에 컨셉 가리지 않고 일을 하려는 최진실에게

조언하며 최진실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배우로 성장하도록 이끈다. 

 

최진실 최진영 남매
최진실 최진영 남매

최진실의 명성이 하늘을 찔러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되는 일도 겪지만 그런 누나를

시기하고 질투하기보다 최진실의 성공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였다고 한다.

방송에서도 이런 돈독한 남매의 모습이 자주 공개되었다.

그는 한편으론 최진실이라는  커다란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 섭외 전화가 오면 항상 따라붙는 조건이 누나와 함께 출연해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누나와 함께 나오지 않은 프로그램에서도

늘 누나 얘기를 물어보니 연예인으로서의

본인의 입지에 회의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최진실 최진영 남매 그리고 어머니
최진실 최진영 남매 그리고 어머니

3. 최진영 모델을 거쳐 연기자로 데뷔

최진영과 최진실은 서로에게 좋은 연기 파트너였다.

둘은 1986년 KBS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으나 6개월 과정의

연수비 38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해야만 했다.

 

1990년, 최진영은 최진실의 영화 《남부군》의 고사식에 동행하였는데

이때 그를 눈여겨본 이춘연이 본인이 기획한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

그를 캐스팅하였고 이를 통해 배우로 데뷔하게 된다.

 

최진영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최진영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이춘연

제작사 씨네2000의 대표이자 영화인회의 이사장으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여고괴담》 시리즈, 《더 테러 라이브》 등을 기획•제작하였다.

2021년 5월 11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1991년 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여러 상을 수상하며 배우로 인정받았다.

1991년 12월 제12회 청룡 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자 신인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때 누나 최진실은 인기 스타상을 수상하여 최초의 남매 수상자가 되었다.

그 후, 여러 작품에 출연하게 된다. 

1991년 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최진영
1991년 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최진영
1991년 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최진영
1991년 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최진영

1993년 24세의 나이에 경원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

이때에도 어려웠던 가정 형편 탓에 비교적 늦게 입학한 것이었으나

여러 이유로 졸업까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994년 MBC 《우리들의 천국》에 출연하여 배우로서 상종가를 치고 있을 때 입대한다.

 

1994년 MBC 《우리들의 천국》에 출연 최진영 장동건 정찬우
1994년 MBC 《우리들의 천국》에 출연 최진영 장동건 정찬우

4.  군대시절  (병역 의무)

 

연예인들의 병역 비리가 많던 시절에 정석대로 입대하게 된다.

 

1994년 2월 28일 306 보충대에 입소

이후 5사단 훈련소를 거쳐 5포병여단 98대대에서 복무

 

부유층 자제가 꿀 보직 찾던 시절에 최전방인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하다가

국방 홍보원 홍보 지원대로 전속하여 연예 병사로 군 복무를 마쳤다.

 

군대시절 최진영
군대시절 최진영

 

국방 홍보원 홍보 지원대에서 군복무

상병 때까지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5포병여단 98포병대대에서 복무하다가 차출되었다.

국군 홍보 영화에 다수 출연하였다. 국군 홍보 영화로 대한민국 해군의 장교가

해군 특수부대인 UDT/SEAL에 지원해 강인한 훈련을 거쳐 특수전 장교로 거듭나는

영화 《해마》에서 수병 역할을 맡았다.

실제로는 후임인 감우성과 안정훈은 중위와 소위로 출연했다.

 

군대시절 최진영
군대시절 최진영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 전역 

상병 이후 문선대로 차출되어 군 복무를 마쳤다.

 

당시 군 후임은 감우성, 안정훈, 차인표, 이휘재, 구본승이었다.

(최진영이 회고하기를, 차인표는 모든 면에서 FM이고 모범적이었다고 했다.)

군대시절 최진영
군대시절 최진영

5. 최진영 스카이(SKY) 가수로 데뷔

1996년 제대 후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모습을 보인다.

최진영은 어린 시절부터 기타 연주 습득에 열정을 보이는 등 음악에 흥미가 있었고 노래에

소질이 있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20대시절  최진영의  노래 부르는 목소리

  • 1990년 이별 이야기(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 1990년 그 집 앞(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 1992년 슬픔의 심로(우리들의 천국)
  • 1993년 걸어서 하늘까지(결정! 최고 인기가요)
  • 1993년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 1990년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평소 동경하던 조용필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 이때 최진영은 배우로서 노래 한 곡을 하게 되었고

 조용필(그 모습을 보고 최진영에게)

"너 노래할 생각 없니? 네가 노랠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내가 제작을 하겠다."

라는 얘기를 해 주었다고 한다.(2008년 tvN 예능 '현장 토크 쇼 택시')

 

1998년도부터 잠시 모습을 감추게 된다.

이 시기에 가수로서의 서막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1999년 11월부터 가수 스카이(SKY)로 활동

처음엔 가수의 얼굴을 안 밝혔고 음악 방송에서 인기 순위가 올라가도

뮤직비디오만 틀다가 마침내 노래가 1위가 되자 모습을 드러내었다.

'최진실의 동생', '배우 최진영'의 꼬리표를 떼고자 스카이(SKY)라는 예명과 함께 가면을 쓰고 등장

이때 배우 최진영이 무대에 나타나 대중을 충격에 빠뜨렸었다. 

 

최진영 데뷔곡 《영원》 1위
최진영 데뷔곡  《영원》 1위

 

데뷔곡  《영원》

그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인 《영원》은 사실 김정민에게 갈 곡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소속사에 들렀다가 우연히 《영원》의 데모 버전을 들은 최진영은 김정민에게 이 곡을

부르고 싶다고 요청하였고 이에 김정민은 흔쾌히 수락하여 최진영의 《영원》이 탄생한 것이다.

해외 입양을 주제로 한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초호화 캐스팅과 퀄리티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되곤 한다. 배우 장동건, 차인표, 정준호, 김규리, 이서진이 출연하였는데

당시 장동건, 차인표, 김규리는 전성기나 다름없는 때였으니 그 위용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장동건은 1992~1994년 MBC 《우리들의 천국》에 함께 출연하여 친분)

 

데뷔곡 《영원》 뮤직비디오
데뷔곡 《영원》 뮤직비디오

노래 녹음 후기

곡 녹음 당시 조장혁이 완곡으로 가이드를 녹음하고 거기에 맞춰 연습했다고 한다.

사실 최진영은 미성에 가까웠으나, 이후 노력으로 허스키한 목소리가 되었다.

한강에서 연습하다가 신고를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데뷔곡 《영원》
데뷔곡 《영원》

이 한 곡을 녹음하는 데에만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보통 프로 가수들이 한 곡을 녹음하는 데 1프로(=4시간)가 걸리는데, 최진영의 경우

녹음과 연습을 동시에 하였고 무려 300프로(=1200시간)를 녹음에 투자했다.

바뀌기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그가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스카이 최진영
스카이 최진영

'영원' 뮤직비디오가 드라마화될 예정

해당 드라마가 바로 병원 드라마로 잘 알려진 《카인과 아벨》이다.

이 드라마의 원안은 '영원'의 뮤직비디오 내용이었다. (고아로 태어나 해외에 입양된 형제가 각각

다른 인생을 살게 되면서 훗날 대척의 상대로 만나게 된다는 스토리)

소지섭과 정려원, 지진희, 추상미 등이 출연 예정이었으나 여러 이유로 제작이 미뤄지게 됐고

이에 소지섭을 제외한 주연급 배우들이 모두 하차하게 되었다. 이뿐 아니라 원안과 제작진마저도

모두 교체되어 당초 알려졌던 것과 이름만 같을 뿐 '영원'과도 전혀 교차점이 없는 이야기가 됐다.

 

 

가수 스카이(SKY)로서 활동한 30대 최진영의 목소리와 배우로만 활동하던 

1집 앨범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2000년 각종 시상식에서 많은 상을 수상한다.

 

최진영의 묘비에 각인(이 곡의 가사 중 일부)

'나 언제라도 저 하늘이 날 부를 때 한없이 사랑했던 추억만은 가져갈게'

 

1집 타이틀곡 《영원》의 대박 이후로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에 전념한다.

 

스카이 최진영
스카이 최진영

 

2001년 2집을 발매

타이틀곡은 《24시간의 신화》였는데 《영원》이 워낙 히트했어서

그렇지 이 노래 역시 상당히 인기 있었다.

 

2001년 3월 16일 납치 사건

새벽 정체 모를 2명의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할 뻔하였으나 다행히 가까스로 탈출하여

미수에 그쳤다. 실제로 1990년대 말에서 2000대년 초까지만 해도 연예인을 향한

납치 미수 및 테러 사건은 꽤 비일비재했다.

 

그 후로 2004년 3집까지 가수로 활동하였다.

 

가수 활동 중단

야구선수 조성민이 아내이자 배우 최진실 폭행사건으로 인해 최진실과 최진영은

전치 3주 진단을 받으면서 최진영은 2003년 1월에 예정되어 있었던 3집 활동이

두 번이나 연기되었었는데 이 앨범이 2004년 9월 발매될 예정이었다.

이 중 한 번은 최진실, 조성민의 갈등과 이혼 관련 문제로 인해 집안을 돌보기 위함이었다.

3년 만의 컴백 직전에 조성민이 초를 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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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조성민 '아내이자 배우 최진실 폭행 사건으로 대한민국 떠들썩'

야구선수 조성민이 2004년 8월 1일 별거중이던 '아내이자 배우 최진실 폭행 사건'으로 대한민국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을 되돌아 보자. 조성민도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봐도 개***라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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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건 3집 앨범 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이후 3년간의 공백기를 가진다.

이렇게 대외적인 이유와 개인적인 이유로 활동을 중단하였다.

 

2006년 7월

백혈병 어린이 돕기 자선 패션쇼에 참여하였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최진실과 함께 여성 의식 캠페인에 참여하였다.

 

2007년 3년만에 드라마로 컴백

3여 년의 공백기 끝에 KBS2 아침 드라마 《사랑해도 괜찮아》로 배우로서 컴백한다.

 

KBS2 아침 드라마 《사랑해도 괜찮아》
KBS2 아침 드라마 《사랑해도 괜찮아》

 

배우로서는 10년 만의 컴백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종방연 기념 현장에서 외주 제작사 대표를 향한 폭행설에 휘말린 것.

이것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빈축을 샀다. 다만 여기엔 일화가 있었다.

동생을 보기 위해 종방연 현장에 찾아온 최진실이 외주 제작자와 대화를 하다 언쟁이 붙었고

이 과정에서 상대가 최진실에게 욕설을 내뱉어 화가 난 최진영이 멱살을 잡은 것이었다.

상황이 어찌 됐건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다 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최진실, 최진영은 다음 날 상대를 찾아가 사과하였고 상대도 사과를

받아들이고 일단락됐다. 이후 최진영은 다시 1년간 활동이 없었다.

2008년 여름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하려고 했다.

 2008년 7월 초 방영된 '라디오 스타'를 필두로 '현장 토크 쇼 택시',

'우리 결혼했어요' 등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누나 최진실 사망 

2008년 10월 2일 누나 최진실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그의 연예계 활동은

다시금 멈추게 되었다. 

 

 

조카사랑 최진영

남매는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감이 강했다.

 

최진실(조성민과의 이혼을거부하던 때)

"아버지 없이 자란 아픔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최진영

"내가 조카들의 아버지 역할을 할 테니 걱정 말라"며 누나를 다독였다.

실제로 최진영은 최진실이 살아 있을 때에도 조카들의 후견인 역할을 해 왔다.

 

 

2008년, 최진실이 떠났을 때 불과 6살 유치원생이던 최준희가 걱정됐던

 

최진영(평소 친분이 있던 성우 이선에게)

"뽀로로가 되어 최준희를 위로해 달라" 

 

당시 6살의 최준희(뽀로로(이선)에게)

"뽀로로. 넌 엄마가 있니?"

 

성우 이선(애니메이션 '뽀로로'의 성우로 유명)

 "난 엄마가 없어. 하늘나라로 가셨대. 그래도 괜찮아. 보고 싶을 땐 사진을 보면 되니까."

 

지인들 말에 따르면 최진영은 누나의 죽음 이후 슬픔에 못 이겨 힘겨워하다가도

조카들을 생각해서 열심히 살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최진영과 조카 최환히
최진영과 조카 최환히

최진영(생전 마지막 인터뷰)

"둘째 조카(준희)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학비가 만만치 않다,

두 조카들에게 삼촌이 뭐 하는 사람인지 보여 주고 싶다."

연예계 활동을 재개하려는 이유도 모두 조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 두 아이를 보란 듯이 키우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2010년 1월 MBC '기분 좋은 날'

조카들과의 일상을 공개하며 다정하고 친구 같은 삼촌의 모습을 보였다.

 

2010년 1월 MBC '기분 좋은 날' 최진영
2010년 1월 MBC '기분 좋은 날' 최진영

2008년 11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입학(40세)

최진실 사망 직후인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늦깎이로 입학을 해 화제가 된다.

누나와의 약속 중 하나였다고 한다. 최진실은 어린 시절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교 과정을 끝내

못 마친 동생을 안타깝게 여겼고 이에 대학 진학을 권유했었다.(최진실의 사망 전에 응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이자 연출가로 유명한 최형인의 제자가 된다.

 

2009년 6월엔 최형인이 연출하는 연극 《한여름 밤의 꿈》에 출연

 

2009년 6월엔 최형인이 연출하는 연극 《한여름 밤의 꿈》
2009년 6월엔 최형인이 연출하는 연극 《한여름 밤의 꿈》
2009년 6월엔 최형인이 연출하는 연극 《한여름 밤의 꿈》
2009년 6월엔 최형인이 연출하는 연극 《한여름 밤의 꿈》
2009년 6월엔 최형인이 연출하는 연극 《한여름 밤의 꿈》
2009년 6월엔 최형인이 연출하는 연극 《한여름 밤의 꿈》

입학 후, 착실한 학교생활로 수석을 거머쥐기도 하였다. 만학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다정한 동기이자 선배로 잘 어울렸던 것으로 보인다.

사망 당시 학교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그의 동기와 후배들은

그를 '우리의 고민을 귀담아들어 주던 사람', '본받을 만한 사람'으로 회고하였다.

 

교수 최형인 

"살기 위해 공부하고 연기한다"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더 세심히 챙기지 못한 점을 미안해하였다.

그는 조기 졸업을 하고 박사 과정까지 밟고 싶어 하는 등 대학 생활에 꽤나 적극적이고 진심이었다.

누나의 사망 후에도 열심히 살아 보려던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진영은 누나의 사망 후, 누나와 조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사망 전까지도 많은 싸움을 해 왔었다.

우선, 최진실의 장례 절차를 마친 후 얼마 되지 않아 친권과 재산권에 관련하여 조성민과의 갈등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3자로부터 무례한 막말까지 듣기도 하였지만 결국 친권 및 양육권을 지켜 냈다.

같은 해 8월에는 최진실 유골 도난 사건이 일어나며 또 한 번 깊은 고통을 겪는다.

2010년 2월엔 '신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최진영을 비롯한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해당 판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어머니와 교수 등 지인들의 이야기로 비추어 보아

2010년 새 학기부터는 도통 학교에 나가질 않았고 하루 두 끼도 채 챙겨 먹지 않고

방에서만 생활하는 등 상당히 무기력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수석을 거머쥐는 등 착실한 학교생활을 하였으나 이듬해 사망하여 끝내 대학 졸업장은 받지 못했다.

 

6. 2010년 3월 29일 최진영 사망

최진영은 세상을 떠났다. 

사망 당일 오후에도 아버지와 대학교수 및 몇몇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별다른 유서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에 '최진영 유서'라고 올려져 있는 사진은

생전 그가 홀로 끄적였던 메모일 뿐 공식적인 유서가 아니다. 

누나가 떠난 후 생각보다도 더 많이 힘들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진영 장례식
최진영 장례식

최진영(지인들에게 종종)

"모든 것이 힘들다."

심경을 토로했던 적이 있는가 하면 과거에도 한차례 자살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최진영(2010년 3월 초 이루어졌던 기자 간담회)

"조용히 조카를 돌보며 생활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날 안쓰럽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어둡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이젠 그러지 않기로 했다."

 

최진영과 조카 최환희
최진영과 조카 최환희

사람들의 시선에 힘겨워함과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 정옥숙의 말에 따르면, 새벽마다 만날 사람이 있다며 자주 집을

나서곤 했는데  알고 보니 누나의 묘에 들렀던 것이었다.

사람들과 마주치는 게 싫다며 일부러 새벽에 나갔다고 한다.

묘 앞에 몇 시간씩 앉아 있다가 누나가 생전 살던 집에 들러 누나의 침대에

누워 있다 오는 등 좀처럼 누나의 빈자리에 적응하지 못했던 듯하다.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의 유골함이 도난됐었던 후부터 특히 심해졌었다고 한다.

 

최진영과 조카 최환희
최진영과 조카 최환희

 

원체 어려서부터 부모에게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던 최진영이 누나에게만큼은

속마음이나 비밀을 허물 없이 털어놓았을 정도였다고 하니 남매 그 이상의 애틋함이었을 것이다.

사망 후, 최진영은 갑산공원 묘원에 누나 최진실과 함께 합장되며 영원히 잠들었다.

 

최진실 최진영 남매
최진실 최진영 남매

 

2011년 최진실, 최진영 남매의 묘지가 타인 소유의 개발 제한 구역 내에 위치해 있어

강제 이장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결국 이장되지는 않았다.

 

2018년 4월 1일 JTBC '투 유 프로젝트 슈가 맨 2'

희열 팀 슈가 맨으로 소개되었으며 《영원》이  그의 슈가 송으로 선정되었다.

《영원》의 디렉터 조장혁, 작곡가 고성진, 랩퍼 강현수가 그를 대신하여 출연했다.

작곡가이자 밴드 플라워의 기타리스트. 외국에서 이 노래의 리메이크 제안도

들어왔었으나 "이 노래는 영원히 최진영만의 《영원》으로 남았으면 한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원'의 랩 부분을 맡은 인물이다. 이 부분의 가사도 직접 작사하였다.

 

2018년 4월 1일 JTBC '투 유 프로젝트 슈가 맨 2'
2018년 4월 1일 JTBC '투 유 프로젝트 슈가 맨 2'

 

2022년 1월 26일 KBS2 '갓 파더'에서 조카 최환희가 KCM, 김정민, SHORRY J와

소소한 송년회를 보내다 최진영과 친분이 돈독했던 김정민이 최환희에게 과거 삼촌과

관련된 얘기를 해 주면서 언급되었다.  대부분 최환희가 태어나기 전 얘기들이라서

그의 인기를 실감 못 했기에 그의 친한 지인 중 한 명인 김정민을 통해 전해 듣는다.

김정민이 최환희더러 삼촌과 많이 닮았다고 얘기하자 ,

조카 최환희는 삼촌 최진영을  많이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2년 1월 26일 KBS2 '갓 파더'에서 조카 최환희
2022년 1월 26일 KBS2 '갓 파더'에서 조카 최환희
KBS2 '갓 파더'에서 조카 최환희
KBS2 '갓 파더'에서 조카 최환희

 

2022년 5월 1일

조카 최준희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어머니 최진실과 삼촌 최진영의 사진과

'내 영원 속에서 오래오래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라는 문구와 함께 《영원》을 커버하여 올렸다.

 

 

7.  연예계 친분 

최진실과 절친했던 조신애, 이영자, 홍진경, 엄정화, 정선희등과 친했다.

 

배우 성동일

1991년, 연극 《우리로 서는 소리》에서 만나 연을 맺었으며 성동일에게 연극 무대를

넘어 드라마와 영화에 진출해 보라고 조언을 해 준 사람이 최진영이었다고 한다.

 

1991년, 연극 《우리로 서는 소리》
1991년, 연극 《우리로 서는 소리》
배우 성동일
배우 성동일
배우 성동일
배우 성동일

배우 이서진

이서진은 최진영의 노래 《영원》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반갑다 친구야' 이서진 최진영
'반갑다 친구야' 이서진 최진영
'반갑다 친구야' 이서진 최진영
'반갑다 친구야' 이서진 최진영
'반갑다 친구야' 이서진 최진영
'반갑다 친구야' 이서진 최진영
'반갑다 친구야' 이서진 최진영
'반갑다 친구야' 이서진 최진영
'반갑다 친구야' 이서진 최진영
'반갑다 친구야' 이서진 최진영

 

가수 코요태 빽가

2008년 11월에 빽가와 함께 베트남으로 봉사 활동을 가기도 했으며

최진영 사망 후  빽가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잊지 않고 기억하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진들을 올린다.

소중한 사람이기에 소중하게 간직하셨으면 한다. 축복해 주시고 기도해 달라"

며 자신이 찍은 최진영의 사진들을 업로드하였다.

 

2008년 11월에 빽가와 함께 베트남으로 봉사 활동
2008년 11월에 빽가와 함께 베트남으로 봉사 활동
2008년 11월에 빽가와 함께 베트남으로 봉사 활동
2008년 11월에 빽가와 함께 베트남으로 봉사 활동

배우 김보성

최진영과 김보성은 1990년대 초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

《열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총 세 작품이나 같이 하였다.

김보성은 최진영의 운구를 했으며 안장식에도 참석하였다.

 

최진영과 김보성은 1990년대 초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최진영과 김보성은 1990년대 초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최진영과 김보성은 1990년대 초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
최진영과 김보성은 1990년대 초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
김보성은 최진영의 운구를 했으며 안장식에도 참석
김보성은 최진영의 운구를 했으며 안장식에도 참석

 

배우 김승현

김승현은 최진영의 운구를 했으며 사망 후 가까운 지인과 가족끼리만

진행하였던  최진영 안장식, 1~4주기 추모식 등에도 참석하였다.

 

배우 김승현과 최진영
배우 김승현과 최진영

 

개그맨 홍석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동문으로 연극 《한여름 밤의 꿈》에 같이 출연하였으며,

최진영의 사망 후에도 방송에서 종종 그를 언급하며 그리움을 나타냈다.

 

 

감자골 사태 당시 김국진을 숨겨 준 사람이 최진영이었다고 한다.

 

축구를 좋아하여 연예인 축구팀 'FC SYSTEM'의 일원이기도 했다.

(최진영, 김종국, 탁재훈 등이 속해 있던 아마추어 축구팀)

 

축구팀 'FC SYSTEM'의 일원 최진영, 김종국, 탁재훈
축구팀 'FC SYSTEM'의 일원 최진영, 김종국, 탁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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