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대단히 잘 추는 건 아니지만 춤선이 좋다'
'노래를 엄청 잘 하는 건 아닌데, 다른 사람이 부르면 이 느낌이 안 난다'
가수 이효리를 두고 하는 표현들은 엄청나게 많다.
데뷔이후 지금까지도 탑스타 자리를 내려 오지않는 이효리.
다른 연예인들은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활동을 중단 하면 인기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효리는 결혼을 해서도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있다.
그녀의 프로필과 함께 어린시절부터 데뷔전부터 데뷔후까지의 이야기 속으로 슝~~~
1. 이효리 프로필
본명 이효리 李孝利|Lee Hyori (본관 한산 이씨 (韓山 李氏))
출생 1979년 5월 10일 (현재 나이 44세)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오송리
신체 164cm|57kg |A형
상징색 레드
MBTI ENFP
종교 무종교(핑클 멤버 중 유일한 무종교인, 나머지 핑클 멤버 전부 크리스천)
데뷔
1996년 EBS 드라마 감성세대 출연
1998년 핑클 정규 1집 Blue Rain(데뷔일로부터 +9148일, 25주년)
가족
아버지 이중광
어머니 전기순
오빠 이국진
언니 이애리, 이유리
배우자 이상순(2013년 결혼 ~ 현재)
학력
서울동작초등학교 (졸업)
서문여자중학교 (졸업)
중경고등학교 (전학)
서문여자고등학교 (졸업)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 / 학사)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문화컨텐츠학 / 석사)
소속사
2023년 2월 16일 안테나
2017년 키위미디어그룹
2020년 ~ 2022년 11월 16일 에스팀
2010년 ~ 2015년- DSP미디어 - 엠넷미디어 - B2M 엔터테인먼트
이효리 소속사 안테나
소속 그룹
핑클 포지션 리더, 메인댄서, 서브보컬, 메인래퍼 현재의 리드보컬.
'루비'같은 곡을 제외하면 핑클의 노래는 옥주현, 그 다음은 이효리의 보컬이 주도한다.
당시엔 메인보컬이 리드보컬이었고, 그 외는 서브보컬이라 했다.
부캐릭터
천옥
거꾸로 해도 이효리
핑클의 레드
마더 효레사
결혼 이후 별명. 결혼 전에는 센언니 이미지만큼 포스가 강했지만,
결혼 이후 제주도 생활을 하던 동안 성격이 유해지면서 생긴 별명이다.
린다G
놀면 뭐하니?의 여름 혼성 그룹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부캐.
미국으로 어렵게 유학을 간 후 우연히 작은 미용실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게 대박이 나서
미국 전역에 헤어샵 200여 개 지점을 두고 있는 어마어마한 재력가가 되었다는 설정이다.
LA에 살고 있으며, 오픈카를 타고 다닌다. 미국에 너무 오래 살아서 한국어 단어들을 많이 까먹었다.
그런데 너무 한인타운에만 있어서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암묵적으로 성을 안 부르기로 했다가
나중에는 성을 뒤로 옮겨 부르기로 했다.
이효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lee_hyolee/
이효리 카페
https://cafe.daum.net/hyolee79
이효리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leehyoriofficial
팬카페 효리투게더 (약칭 '횰투', 다음카페, 이효리 인증有)
2003년 이효리 신드롬 이후에 생긴 곳으로 초창기에는 개인팬 위주였다.
덕분에 개인팬과 그룹팬의 많은 트러블이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누그러진 편이다.
'효리투게더'에는 2007년부터 이효리가 글을 꾸준히 남겨왔다.
세월이 흘러 현재 효리투게더는 이효리와 소속사가 인정한 공식 팬클럽이나 다름없다.
커뮤니티 효리세상 (약칭 '횰세') 이효리갤러리 (약칭 '횰갤', 디시인사이드)
이효리팬들은 캠핑클럽 마이너갤러리로 둥지를 옮겼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lists?id=finklcamp
2. 이효리 어린시절
이효리는 1979년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現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오송리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효리 살던집 공개
2012년 가수 이효리는 32년만에 자신이 어렸을때 3살때까지 살던 집을 방문해서
감회가 새로운 모습을 사진을 찍어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었다.
이효리
“내가 이런 집에서 살았어? , 2살 때 엄마한테 업혀 떠났다던 내가 태어난 시골집…
32년 만에 와보니 참 신기하다. 모든 게 사진 그대로여서”
이효리의 시골 집은 담 아래 장독대가 있고,
마당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모습.
이효리의 아버지는 서울에 가기 전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에서 우체부로 일했다고 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어머니 역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언니인 이애리씨가 막내 효리를 돌봐야 했다고 한다.
이효리 언니 이애리
"내가 열한 살, 효리가 세 살 때 가족이 서울로 올라갔다, 효리는 고향에 대한 추억이 없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 효리를 업고 다닌 기억이 난다, 마냥 귀여운 막내가 연예인이 돼 화려한 옷,
화려한 화장을 하고 TV에 나오니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고, 어려웠다, 요즘 방송 활동을 안하니까,
그런 모습이 보고 싶기도 하다. 내 동생이 아니더라도 그런 여가수가 있다면 참 멋있다고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이효리가 2살이 되던 1980년에 서울로 상경했었는데, 이 때 부모님 전재산이 500원이었다고 한다.
이효리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갔다. 옛날 사진들 보며 한참 웃었다.
사진도 기억도 선명하진 않지만 참고로 난 막내”
이효리 아버지 이발소
전 재산을 모아 돼지 1마리를 사서 새끼를 낳아 팔고, 친인척들에게 돈을 빌려 시장 안에
'중앙 이발소'라는 자그마한 이발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약 8평 정도 크기의 이발소였는데, 절반은 일하는 장소(일터)였고, 절반은 생활공간(숙식처)으로,
이 이발소 안에 있는 방안에서 여섯 명의 가족이 가난하게 살았었다.
이효리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집안 분위기는 가족이 아니라 '합숙하는 팀원들이 함께
생활하는 분위기 였다, 절대적 빈곤을 이겨내기 위해 '가족 6명이 한 달을 5만원으로 생존하기'
같은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으로 어린 시절을 살아왔었다고 한다. "
반찬투정 제로
아버지가 굉장히 엄한 분이어서, 어릴 때 반찬 투정을 하거나 반찬을 골라 먹으면
밥상을 엎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좋은 반찬(계란)을 먼저 먹거나
한 반찬을 두 번 이상 연속으로 먹을 경우 (그 당시에 비쌌던 '쌀값'을 아끼기 위해 저녁에는
엄마의 '수제비'와 '라면'을 섞어 먹었는데 맛있는 '라면' 쪽을 먼저 집어먹을 경우),
밥을 평소보다 더 먹는 경우 외에도
화장지 대용 달력
건물 안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할 때 일력(습자지처럼 얇은 재질의 달력의 일종으로, 종이를 8등분 시켜
면도용 휴지 또는 화장지 대용으로 사용하였다) 종이를 3장 이상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우, 세수할 때
비누칠을 2번 이상 할 경우 등등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규칙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이효리
"서울 사당동에 이수시장이라고, 아빠가 시장 골목에서 이발소를 했어요.,
4남매 여섯 식구가 방이 하나 딸린 이발소에서 일도 하고 생활도 했죠. 방이 2평도 안 됐어요,
살기가 매우 버거웠죠. 아빠는 틈틈이 시장에서 과일 좌판을 했어요.
노점 단속을 나와서 과일 좌판을 막 엎어버리고 하는 모습이 어린 시절의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이효리
"이발소 건물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서 아빠가 새벽 5시에 인력사무소에 나가는 모습도 봤고요.
중·고교 때까지 줄곧 어렵게 생활했어요. 대학 1학년 때 갑자기 연예인이 되면서 돈을 많이 벌게 된 거죠"
게다가 ‘메리’라는 이름의 개를 10년 가까이 키웠는데 노견이 되자 아버지가 살림에 보탠다고
보신탕집에 팔았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 마음과는 별개로 어린 시절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남아있다고 한다.
까만 피부색과 짧은 머리카락 때문에 (이발소 방안에 빈대와 이(곤충)가 많았다고 한다.)
'못난이'라는 별명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이효리(어릴적 세 들어 살았던 집주인 아주머니)
"우리 집엔 4남매가 있었고 나이가 어려서 모두 방과 마당에서 뛰어 노는걸 좋아했다,
그런데 주인집 아주머니는 뛰지 못하게 했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뛰면 엄마에게
'애들교육 어떻게 시켰냐?'고 따져서 마음이 아팠다,
그 아주머니는 자신의 자식들과 내가 어울리지도 못하게 해서 서러움을 느꼈다,
한번은 아주머니가 5백원을 잃어버렸는데 내가 훔쳐간 것처럼 몰아세워 서러웠다"
이효리는 가수처럼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게 좋아서 노래방을 자주 갔었는데
그 당시 청소년에게 노래방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여러 차례 걸리게 된다.
중학교 퇴학
이효리는 중학교를 이전퇴학한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 ,
요즘 & 의미로는 '강제전학'인데 이때 당시 청소년유해업소로 지정되어있던
'노래방'에 출입해서 받은 징계라고 한다.
학교측
"다른 학교로 전학 가주 시겠습니까?"
당시 아버지가 굉장히 엄한 분이셨기 때문에 조용히 엄마와 상의후 전학을 갔고 ,
어버지는 현재까지도 원래 다니던 학교에서 졸업한 줄 알고 계신다고 한다.
이효리( 고교시절 선생님)
"고교생 때 검정색 모발이 안어울린다고 생각해 맥주로 머리를 감고 색을 넣었다.
그런데 선생님 한 분은 나의 그런 모습을 너무나 싫어해서 자주 검사를 하셨다,
머리카락에 색을 들인 걸 들키면 그 선생님은 검정색으로 염색하라고 하셨지만
난 먹물만 칠하고 그냥 학교에 갔다"
이효리는 가수로 활동하던 중 어느날 방송국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선생님은 웃으며
"너 학교 다닐때 그렇게 염색하더니 지금은 노랑머리 됐구나"
일찍부터 학업과 생계활동(아르바이트)을 병행하며 성장했다고 한다. 중학생 때부터 남다른 발육(2차 성징)과
함께 미모가 확 피어나기 시작해서 생계활동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주로 친인척들 가게일(예시 : '실내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캠핑클럽에서
핑클 멤버들에게 '다양한 포즈'와 '노는 방법'을 보여주기도 했었다.)을 봐주는 걸로 용돈을 벌었다고 한다.
서문여자고등학교(이하 서문여고) 재학 시절(고2 때 전학)부터 연예계 매니저들에게
자주 명함을 받다보니 자연스레 연예인을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 강남에서는 연예기획사 매니저들의 '길거리 캐스팅'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서문여고가 예로부터 연예인이 많이 배출되는 곳으로 유명했으나, 연예인을 꿈꾸는 학생들이
흔히 보이는 '화보촬영', '연습생 활동', '오디션 참여' 등의 이유로 학업을 빠뜨리는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이효리는 교내에서 모범생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조용히 그림 그리던 학생
특별활동도 '미술'을 선택하여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학생이었기에 가수로 대성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당시 선생님들과 급우들이 증언하였다.
'미술'에 대해서는 훗날 효리네민박 시즌2에서 이효리가 윤아에게 스스로 얘기하기도 했다.
3. 이효리 데뷔 이야기
1996년 데뷔 EBS 청소년 드라마 <감성세대>
핑클로 본격 데뷔하기 전에 EBS 청소년 드라마 <감성세대>(1996)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친구가 오디션 보러가는 걸 따라갔다가 TV에 나오게 되었다고 하는데, 동갑내기 친구이자,
당시에 서문여고 3대 얼짱 중 한 명이었던 탤런트 박시은이라고 한다.
2011년 라디오 방송에서 이효리는 이때 맡은 배역이 '불량청소년'에
'넘버 2'였다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감성세대 1화, 4화에 등장)
예쁜 걸로 유명했다는 의미로, 성유리처럼 하얀 피부에 전형적인 한국의 미인상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예쁜 외모에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리액션을 잘하며,
웃을 때 매력이 넘치는 '성격 미인'이였다고 한다.
핑클 시절 친언니의 증언에 따르면, 고등학교 때까지 얌전하던 아이였다고 한다.
친구도 몇 명 없던 아이가 방송에서는 건들건들거리며 칠공주파처럼 나온다고 속상해했다.
이에 대해 이효리는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인지 MC들이 자꾸 그런 식으로 몰아간다고 말했다.
2012년 정재형 이효리의 유&아이 방송에 신화가 출연했을 때,
김동완이 '학창시절 이효리는 데뷔 전부터 잠원동 최고의 퀸카였다.' 라고 밝혔다.
김동완
"이효리 과거 고백 '잠원동'에서 유명했다... 남자들 줄서서 ... ,
남학생들이 이효리씨 사진을 한장씩 가지고 있었다. 나도 있었다."
이효리는 '방배동'에서 살았지만,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잠원동'에서
자주 목격되는 이효리를 '잠원동' 퀸카로 부른 게 아닐까 추정.
서문여고 재학 시절에는 지역에서 잘나가는 걸로 매우 유명했다고 한다.
이효리에 대한 소문은 대표적으로 휘문고 김동완, 세화고 성시경, 현대고 노홍철, 광남고 옥주현,
은광여고 한혜진, 중경고 양파와 문희준, 유진 등의 동료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증언한 적이 있다.
노홍철이 가지고 있었던 '고등학생 때 이효리 사진이 방송에 공개된 적이 있다.
김동완, 이효리 , 이지혜와 혼성그룹을 준비
2011년 군 제대한 김동완이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김동완
“이효리와 혼성그룹 데뷔할뻔”
이효리가 대형 기획사에 스카우트 되었다고 말하는데, HOT 매니저에 의해 SM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팀은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고 하며, 이후 김동완은 '신화'에
이지혜는 '샵'에 들어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효리는 생계활동(아르바이트)도 못하고 타이트한 연습생 생활만
강요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빠른 퇴사를 하게 되었다.
(2004년 공개된, 이효리가 1세대 걸그룹 SES의 초대 멤버 후보였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여기저기 옮겨다니다 최종적으로 대성기획(이하 DSP)에 정착했다고 하게 된다.
이효리 캐스팅 비화 3가지
핑클은 예능하는 아이돌의 시초라고 불리울 정도로 '예능 방송'에서도 대활약을 하다보니,
멤버들의 데뷔 일화가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는데, 이효리는 캐스팅 비화 3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1. 스티커 사진을 찍다가 DSP 소속사 매니저의 명함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핑클 데뷔를 말하는 것이니만큼 대학생 때 같은데,
이효리는 고등학생 때부터 매니저 명함 받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2. 강남역 근처 레스토랑에서 근무 중일 때 DSP 관계자를 만나 픽업되었다고 한다.
강남역에서 아르바이트를 맟고 집으로 향하던 이효리가 눈에 띄어 곧바로
달려가 버스를 타던 이효리를 사무실로 데려 왔다고 한다.
(정황상 연락이 안 오니 매니저가 다시 찾아간 듯 싶다.)
3. DSP 이호연 사장의 전화를 받고(매니저가 연결해준 듯?) '직접 만나보자'는 말에 고민하다가
'버스비가 없어 손가락에 있던 은반지를 버스 토큰 대신 사용해서' DSP소속사에 방문했다고 한다.
이효리 힐링캠프(2012년 4월 16일자, 39회 방송)
출연해서 밝힌 일화에 따르면,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길에 전화가 와서
대뜸 '나 이호연이요'라고 했다고 , 곧장 사장을 만나러 갔는데 사장이 이효리를 설득했다고 한다.
만나서는 노래나 춤 하나도 안 시켜보고 훑어보고 바로 뽑았다고 한다.
이효리의 2집 앨범 땡스투
"8년동안 든든하게 지켜주시는 우리 사장님 '나 이호연이야!'
그 말 오래오래 듣고 싶어요. 건강하세요.."
월드뮤직에 위약금을 물어주고 이효리를 데려온 DSP 사장
DSP 사장에게 전화를 받을 당시 이효리는 다른 매니지먼트 업체와 계약한 상황이었고
원래는 샵과 업타운이 소속되었던 월드뮤직에서 업타운 정연준의 기획 하에
'업타운걸스'라는 3인조 팀을 준비하고 있었다. 구성원은 업타운의 여성 멤버였던 윤미래,
1999년 '히트(Heat)'로 데뷔하게 되는 배우 '임유진' 그리고 '이효리' 3인이었다.
'타샤니'
결국 이 업타운걸스(여성힙합 그룹 프로젝트)가 불화로 인해 무산되자
월드뮤직은 기존 계획을 토대로 '타샤니'를 발표했다.
타샤니는 곡이 너무 좋아서 꾸준히 불려져 스테디셀러가 되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다.
임유진의 경우는 소속사를 이적하고 예당음향에서 히트로 데뷔했는데 그룹 이름과 다르게 전혀 히트하진 못했다.
당시 DSP는 이효리를 데려오기 위해 월드뮤직과 컨택을 했는데,
조사해보니 이 월드뮤직이라는 회사가 이효리에게 말도 안 되는 계약 조건으로 계약한 상태여서
이 점을 낚아채고, 즉시 월드뮤직에 위약금을 물어낸 뒤 이효리를 데려왔다고 한다.
월드뮤직
원래 월드뮤직이라는 회사가 당시 소속 가수들에게 불공정한 대우를 한 것으로 매우 유명했다
윤미래는 아예 활동 도중 이 회사와 소송을 하느라 몇 년을 날려먹었고, 컨츄리 꼬꼬 역시
크게 히트 쳤음에도 별다른 수익이 없었다고 밝힐 정도였다.
업타운걸스는 일부 녹음까지 마친 상황이었지만 이효리가 DSP로 이적하면서 무산되었고
이효리는 핑클로, 윤미래는 타샤니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핑클의 원래 데뷔조 멤버였던
애니는 그룹 색깔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데뷔 직전 핑클에서 탈퇴한다.
애니 한국명 이수아
타샤니 해체 이후로 가수로 활동하진 않았지만, 홍영주와 함께 안무가로 연예계 생활을 몇 년간 더 이어갔었다. >
2000년대 초반에 한국어가 어눌한 캐릭터로 당시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브레인 서바이버',
'행복한 대결 막상막하' 등 지상파 메인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했고 엄청난 인기는 아니었어도
나름대로 좋은 예능감을 보여주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갑자기 방송 활동이 뜸해졌고 현재는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이효리가 원래 소속되어 있던 '월드뮤직'에 들어가 윤미래와 함께 타샤니로 데뷔하였다.
이효리를 DSP로 데려오면서 DSP에 있던 애니를 월드뮤직으로 보내어 서로 트레이드하는 조건이었다는 소문
사실 타샤니 1집 발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윤미래 솔로 앨범으로 나올 예정으로 연예가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도 마친 상태였는데 발매 직전에 코러스와 안무가로 참여할 예정이던 애니를 정식 멤버로 승격시켜
타샤니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거다. (타샤니 이름은 당시 내한했던 유명 R&B 그룹 보이즈 투 맨이 지어줌)
2009년 10월 14일자 무릎팍도사 예능에서 성유리가 한 말에 따르면,
'애니'의 빈자리에 들어올 새 멤버(핑클)를 오래 기다렸다고 한다. 20명 정도 거쳐갔다고 한다.
'애니'가 빠지고 세 명이 된 이후 대략 20여명의 멤버 후보들이 거쳐가는 동안 공백기와 함께
세 멤버 모두 몹시 불안했었는데, 멤버가 부족한 상태에서 각자 파트를 녹음해놓고 대기 중이던
어느날 이효리가 마지막 멤버로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훗날 다른 핑클 멤버들의 증언에 의하면, 데뷔하기 전 처음 이효리를 만났을 때
그녀는 펑퍼짐한 힙합 패션으로 옷을 입고 나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모와 몸매가 돋보여서
깜짝 놀랐을 정도라고 한다. (성유리는 이효리의 얼굴에, 옥주현은 이효리의 몸매에 눈이 갔다고 한다.)
2009년 MBC '무릎팍도사' 방송에 성유리가 출연해서 이효리의 얼굴을 처음 보자마자
'됐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는데, 먼 훗날 이효리도 성유리를 실제로 보고 안심했었다고 한다.
성유리의 말에 따르면, 세 명이서 찍은 프로필사진을 본 이효리가 핑클에 합류하길 주저했었다고 한다.
'이진'의 경우, 이효리를 처음 봤을 때 옷차림과 얼굴을 보고 자신보다 어린 줄 알고 곧바로 말을 놨었다고 한다.
이효리도 그런 이진을 보고 '언니'로 착각해서 그러려니 넘어갔는데,
이 헤프닝 덕분에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말을 놓고 편하게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옥주현'의 경우, 사실 HOT 팬일 때부터 이효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일부 HOT팬들 중에 토니 안의 팬이었던 이효리의 사진을 연예인 사진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옥주현도 그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상상플러스 방송)
평소 좋아했던 '언니'가 핑클에 들어와서 너무 기뻤었다고 하며, 만나기 전까지는 대단히 청순한
언니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만나고나니 너무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이어서 놀랐었다고 한다.
2013년 SBS 라디오 파워FM '두시 탈출 컬투쇼' SES와 핑클의 차이
사실 라이벌인 S.E.S 역시 가창력이 뛰어난 바다를 두고, 비주얼이 뛰어난 유진과 슈로 구성
SES와 핑클의 차이라면, SM엔터테인먼트의 오랜 준비 계획과 투자금,
멤버들의 트레이닝 기간, 신비주의 고수 등을 들 수 있다.
대성기획도 여성그룹 계획을 세우고 있긴 했으나, H.O.T.와 SES의 성공을 보고 판도가 바뀌었음을
재빠르게 캐치해 기존 계획을 전면 철회하고 그룹을 재구성하게 되는데 , 3인조로 결성했다가
급하게 컨셉을 바꾸고, 1명을 더 영입하려고 했는데, 그 추가 멤버의 주인공이 이효리가 되게 된다.
그리고 소속사를 떠나는 날까지 오늘날과 같은 전문적 트레이닝을 받아본 적이 없다.
가장 먼저 멤버가 된 옥주현이 성악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이진과 성유리를 지도했다고 한다.
다만 당시 가요계에선 전문적 트레이닝이 오히려 특이한 케이스였다.
오늘날과 같은 체계적 시스템이 아니었다. 김종국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도 딱히 선생님이 없이
스스로 연습하고 멤버끼리 품앗이를 하며 배워나갔다고 한다.
3대 얼짱
이효리의 표현에 따르면, '구색 맞추다'라는 관용구처럼 가창력이 뛰어난 옥주현을 두고,
다른 멤버들은 각기 다른 매력(비주얼)을 원한 것 같아 보인다.
실제로 이효리는 서문여고 3대 얼짱으로 유명했고, 이진은 은광여고 3대 얼짱으로 유명했었다.
만 19세였던 이효리 1998년에 1세대 걸그룹 핑클로 데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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