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5월19일 김미경 교수가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채널에 출연하여 깊은 울림을 줬는데요.
성공한 여성 기업가이자 인생의 멘토로 수많은 20대-30대 여성들의 롤 모델로 유명하기도 하죠.
김미경 그녀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보아요. 슝~
1. 김미경 프로필
이름 김미경 Kim Mi-kyung
출생 1964년 12월 9일 (58세) 충청북도 & 증평군(과거에는 괴산군에 소속된 지역)
소속 더블유 인사이츠(대표) 김미경의 이클래스(대표)
학력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 학사)[수석으로 입학]
종교 개신교
가족 남편, 슬하 1남 2녀
MBTI ENTP
기상시간 오전 4시~5시쯤에 일어나 영어 공부 혹은 명상
자는시간 오후 11시쯤
강의료 시간당 300백만원 ~ 4백만원(년간 10억원)
소속 직원들은 몇 명
90명가량 된다. 대부분이 온라인 평생교육 플랫폼인 MKYU 소속이다.
개발자만 해도 스무 명이 넘는다. 강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MKYU 매출
"작년에 150억 원이었다. 회원들이 입학할 때 내는 돈이 있고. 유료강의 수강료가 있다.
MKYU 회원은 현재 7만8천 명이다. 유튜브 '김미경TV' 구독자는 155만 명 정도인데,
수익모델로서는 어려움이 있다."
좌우명 "매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삶의 목적은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그것을 통해 나를 완성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금도 한 달에 책 4권은 읽는다.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강사 생활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지속해서 자극받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게 독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뭔가 인생이 안 풀릴 때도 공부에 몰입했다.
책 한 권과 나 자신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김미경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naGfDaiM-pM1l-SXYpq37Q
2. 김미경 어린시절
김미경 아버지
원래는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사업가로 전직한 후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김미경의 말하는 능력을 키운 사람은 아버지 였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해서 돼지 농장을 비롯해 여러 사업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김미경
"아버지는 돈을 벌고 싶어 하셨다.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8차례나 사업을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하셨다.
쌀장사도 하고, 양옥집을 지어서 파는 사업도 했다.
마지막에는 돼지농장을 운영하셨는데. 이마저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 집의 생계 책임자는 어머니였다."
김미경 아버지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귀명창'이었다.
귀명창은 판소리를 할 줄 몰라도 듣고 감상하는 수준이 명창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귀명창이 있어야 판소리 명창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김미경이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줬다고 한다.
아버지
"네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다"
김미경
"아버지가 돈은 못 벌었지만 살갑고 여성스러웠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 아버지와
학교 이야기를 3시간씩 하곤 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도 나와 3시간 동안 전화
통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남성이 드물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김미경이 나이가 들어서도 집에 전화하면 아버지와 세시간씩 통화하곤 했는데,
아버지는 여성스러운 성격이었고, 이는 김미경의 말솜씨 향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아버지를 닮아 술은 잘 잘 못 마신다고 한다. 맥주 2잔이면 그 술집에 있는 술을
다 마신 것 같은 얼굴이 되고,온몸이 가렵고 두드러기도 난다고 한다.
김미경의 아버지가 집안을 망할 정도로 힘들게 하자 , 어머니는 야반도주를 마음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고쳐 먹으시고 5년동안 수제비로 때우면서 아버지 빚을 다 갚으셨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시부모 , 친정부모 부양까지 했다고 합니다.
김미경 어머니
"남편이 돈을 못벌면 이혼사유가 아니라 아내가 돈벌 사유지 ,
굉장히 간단한 걸 가지고 왜 그리들 헷갈리고 지랄들 허는지 몰러"
김미경 어머니
위기감을 느낀 어머니가 이대로 가다간 온가족이 굶어 죽겠다 싶어
충북 증평 읍내에서 옷 만드는 양장점을 운영하게 된다.
충북 증평읍에서 '리리 양장점'의 둘째 딸로 통했다고 한다.
충북 증평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김미경은 유년기를 이곳에서 보내게 된다.
어머니는 이곳에서 양장점을 운영하며 5남매를 키웠다고 합니다.
기성복의 등장으로 양장점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문을 닫게된다.
어머니의 또다른 직업 관광객 모집
어머니는 양장점을 그만두고 친구들을 관광업체에 알선해주면서 사례비도 받고,
관광객을 모집해서 관광버스 회사에 연결해주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설악산, 내장산 등 곳곳으로 향하는 관광객은 맞춤복을 입는 경우가 많은데,
단체복으로 옷을 주문 받아 , 만들어서 제공하면서 추가로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어머니는 생활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김미경
"증평이라는 조그만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때도 아주 잘 나갔지~
동네 행사라는 행사는 내가 다 휩쓸었고 공부도 읍내에서는 알아주게 했거든?
저는 어린시절 남달리 고집이 무척 셌던거 같아요."
김미경의 초등학교 성적은 반에서 중상 정도 수준이었다고 한다. (상위 10∼20% 해당)
어릴 때부터 말을 잘해서 줄곧 반장을 했지만, 성적이 좋아야 가능한 전교학생회장은 맡지 못했다고 한다.
김미경은 사업수완과 생활력에서는 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또한 도전 정신도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한다.
3. 김미경 학창시절 이야기(중,고등학교)
김미경
"그런데 고등학교 넘어갈 때가 문제였어요. 당시에는 시골 여자가 고등학교에 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만약 고등학교에 간다고 해도 읍내에 있는 증평여고 정도?
대도시로 간다는 건 꿈도 못 꿨어요. 그런데 내가 바락바락 공부해서 청주에 있는
청주여고에 가게 된 거지. 이건 뭐 집안의 경사도 아니고 거의 읍내 전체의 경사였다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해외 유학 가는 거에요. 해외 유학. 곱게 자란 애들 사이에서 기가 확 죽더라고요"
김미경
"부모님께서는 응원해 주셨는데 대도시에서 새로 적응하는 게 문제였어요.
증평에서는 잘 사는 집이면 양계장 딸 목재소 아들 뭐 이랬는데
청주에 가니 부모님 직업이 교수, 변호사, 방송국 사장 막 이런 거에요.
그러다 보니 애들이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받고 해서 성적도 높고 기도 세고,
돈도 많지 뭐. 그렇게 청주에서 쭉 곱게 자란 애들이 학교 판을
딱~! 잡고 있으니까 기가 확 죽는 거에요. 여기서 어떻게 하면 기를 펴고 학교 생활을 하지?
라는 게 사실 내 청소년기의 가장 큰 과제였어요. 저도 수포자였답니다. 완포자였죠. "
김미경
"일단 내가 공부로 날아다닌 건 아니에요. 공부는 꽝이었지! 특히 수학이나 과학은 거의 빵점이었어.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내가 하도 수학을 못하니까 선생님 하시는 친구분께 수학 과외를 부탁 드렸거든?
그런데 그 분께서 나를 6개월 정도 가르치시더니 그러시는거야… 얘는 수학은 시키지 말라고.
다른 분야는 재능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수학은 답이 없다고 하시는 거에요. 처음에는 기분이 상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그 뒤로 수학시간에는 아예 다른 공부를 했어요.
학기가 바뀔 때 마다 수학선생님과 담판을 지어야 했지.
다른 공부 하겠다고. 상상이나 돼요? 그런데 진짜로 그렇게 했다니까?
일단 앞뒤 가리지 말고 질렀어요. ‘저요!’ 하고"
김미경은 그때부터(중학교 2학년) 수학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2차 방정식이 나오면서 수학을 포기 했다고 한다.
김미경
"내가 택한 건 바로 ‘저요!’ 전략이었어요. 누가 반장하고 싶은 사람? 하면
‘저요!’ 이번에 무슨 행사가 있는데 나가 볼 사람? 하면 ‘저요!’
이번에 어디 봉사활동 다녀 올 사람? 하면 ‘저요!’ 내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라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도 무조건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거지.
그러다 보니까 내가 맡은 일이 하나씩 늘어나고,
친구들도 선생님도 김미경 하면 다 알아주게 되었어요. "
선생님들
“미경아! 이거 올해 학교 행사 목록이니까 미경이가 알아서
친구들 모으고 준비하고 운영해 알겠지?”
김미경
"덕분에 고등학교 생활은 아주 끝내주게 재미 있었어요. 아주 날아 다녔지.
‘저요!’ 하는 데 비결이 어디 있어.그냥 하는 거지"
김미경
"음악을 좋아했다. 증평 감리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내가 음악을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학교 때에는 전교생 조회를 하면 내가 연단에 올라가 애국가를 지휘했다.
서울에서 음대를 졸업하고 내려오신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성악을 배워 군 대회, 시 대회 등에도 나갔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합창단에 들어갔고 기타를 많이 쳤다고 한다.
4. 김미경 대학시절(서울 연세대학교)
학창시절 자신이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미경은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미경
"양장점이 사양길로 접어든 상황이어서 어머니가 경제적 부담을 느끼셨다.
청주에 있는 사범대에 가서 교사가 되라고 권하셨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같은 의견이었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방에 들어가서 방문에 큰 대못을 박고 단식투쟁을 했다.
차라리 굶어 죽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버지가 방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결국 부모의 승낙을 받을 수 있었고 , 서울 유학을 허락했다"
고교 3학년 때 치른 대입 학력고사(현재의 수능)에서 수학 시험을 볼 때
모든 문제의 1번 답안을 정답으로 찍었고 , 5분정도 걸렸고 남은 시간은 잤다고 한다.
연세대 작곡과에 수석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수학 외에
영어, 국어, 역사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합격을 예상했지만 수석으로 연세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하게 된
김미경은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게 된다.
서울 출신 학생들을 만나며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김미경
“중학교 때부터 성악 전공 선생님을 만나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대입을 준비할 때,
꼴딱 하루를 밤새고 연습한 적이 있었다. 기어코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고
시험을 보러 갔는데 서울 아이들과 내 모습이 너무 달라 충격을 받았다.
서울 학생들은 얼굴만 봐도 딱 합격이라고 써있는 것 같았다”
김미경은 연세대에 수석 입학하지만,
음악과는 별로 친하지 않은 대학생활을 보내게 됩니다.
대학생활 내내 음악은 안 하고 딴 짓만 해서 그쪽으로 성공하기는 어렸웠다고 하네요.
김미경
"사실 서울에 올라가서는 진짜 놀랬지. 청주에 갔을 때도 놀라긴 했는데
서울은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거야. 부모님 직업들도 훨씬 빵빵하고
잘 사는 애들이 가득한 거지. 내가 돈이 있어? 빽이 있어? 없으니까 또 ‘저요!’하기 시작했지.
오히려 곱게 자란 애들이 앞에 나서는 건 잘 못하더라고. 그렇게 1학년때부터 과 대표를 하고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무지 재미있게 대학 생활 했어요. 사람들도 정말 많이 만나고
그러면서 많이 배웠지. 대학 생활 하면서도 만약에 학교 안에서만 있었으면 별로 배울 게
없었을 것 같아요. 대신에 학교 밖에서 세상 공부를 했지 하하."
대학 동아리
우연히 학내 세미나를 주도하는 동아리에 들게 된다.
김미경
"연세대 응원단인 '아카라카'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다른 지원생들에 비해
내가 촌스럽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지원자들 대부분은 서울 출신인데다 얼굴도 예뻤다.
나는 아카라카 대신에 다른 동아리를 찾아 나섰는데. 들어간 곳이 학생운동 서클이었다.
그곳에서 2학년 때까지 활동했다."
김미경
“당시 서클에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읽으라고 추천해줬는데 이 책을 읽고 대한민국 역사와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그래서 2학년 때까지는 열심히 학생운동에 전념했다
대학 시절 데모하러 다녔다. 돌 나르고 화염병 만들고 , 왜?라는
호기심이 생기면 몸으로 부딫쳐서라고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다.
다른 애들은 살인마 전두환 자폭하라고 외치는데 피아노 앞에서 노래하고 잇기 불편하더라"
레슨아르바이트를 통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음대 입시생들을 가르치다보니 한달에 프라이드 승용차값을 벌 정도 였다고 한다.
음악적 재능이 상위 0.1%가 아니면 시키지 말라고 권한다고 합니다.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돈을 많이 안 벌어 본적이 없다고 한다.
동생들 학비도 김미경이 벌어서 대줬다고 한다.
5. 김미경 결혼 생활
아르바이트를 하던 김미경은 연세대학 작곡과를 졸업후에 직장인이 되었고
한 달에 25만원 받고 광고회사에서 CM송을 만들다 2년만에 그만두게 되었는데
바로 돈 때문이었다고 한다.
26살에 회사원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 후 1남1녀를 낳아 현재 슬하에 1남1녀를 두게 된다.
아이를 낳고 난후 전업주부로 머무르지 않고 피아노 학원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피아노 한대만을 놓은 동네 피아노 학원 원장이 되었는데 ,
학원생들이 많이 없어 월세를 내지 못 할까봐 걱정 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머니에게 얘기 했더니
김미경 어머니
"자신에게 위기감이 찾아 왔을때 일찍 일어나면 된다."
어머니 얘기를 듣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학원으로 출근한 다음에 처음에는
할게 없어 학원에 가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가 피아노학원에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을 담았다고 한다.
이 편지를 레슨비 청구 봉투에 함께 넣어 보냈다 한다.
그러면서 원생 부모님은 그 정성을 높이 평가하고 그 편지를 냉장고 앞면에 붙여놓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옆집 아주머니가 보고는 자기 아이를 김미경 피아노학원에 보내게 된다.
김미경
"처음에는 졸업하고 피아노 학원을 했어요.
사실 음대에서도 진짜 잘 하는 친구들 빼고는 성공하기 힘들거든.
나는 일찍 다른 길을 찾은 거지. 대신에 피아노 학원은 죽기 살기로 했어요.
쉴새 없이 학부모님들 만나서 상담하고, 집집마다 손수 편지를 써서 보내주고,
봉투에는 애들이 좋아하는 사탕 같은 것도 넣어놓고 하다 보니까
엄마들이 우리 학원만 찾더라고. 27살 때 내가 벌써 내가 남편보다 4배를 벌었지.
그 때 당시 돈으로 350만원이었으니까 지금으로 치면 어마어마할걸?"
그때부터 입소문이 나 소개소개로 인해 학원이 잘 됐다고 한다.
내가 업계에서 (피아노학원 운영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며 원생이 200명이 된다.
불과 2년만에 수강생이 200명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월 천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게 된다.
김미경
"학원생들을 정성스럽게 챙겼다. 피아노학원인데도 1년에 한번씩
큰 합창대회를 개최했고 가족들이 참여하는 행사도 열었다."
김미경
'피아노 학원이란게 평생알바가 따로 없더라, 같은 날짜에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
아이가 배우기 싫으면 아무때나 그만두고 나가버리고, 감히 학생이 선생을 끊다니!
그래서 내가 언젠가는 니네들을 단체로 끊을겨 하고 벼르다가 진짜 내가 끊어 버렸다."
6. 스피치 강사 활동시작
속리산에서 열린 피아노학원장 워크숍에서 김미경이 강연을 하게 된다.
그녀나이 29살 음악학원 성공사례를 발표해 달래서 송파구 학원장들 다 모인
자리에서 3시간반을 쉬지도 않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50분 강의하고 10분 쉬어야 한다는 룰도 모르고 강연을 주구장창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재밌게 이야기를 듣는 모습을 보고 강의가 천직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는 전문 강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한다.
김미경
"그러다가 우연히 다른 피아노 학원 원장님들한테 나의 성공 사례를 발표할 기회가 생겼어요.
스피치 강사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그런데 사실 성공 비결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게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것 두 개 밖에 없는데. 그런데 내가 남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갖고 발표를 하니까 , 사람들이 다 정말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거야.
그 때 바로 두 번째 직업을 발견하게 된 거지. 찾아 보니까 기업체에서 발표나 강연을
하는 스피치 강사라는 직업이 있더라고. 그래서 일단 또 무작정 죽어라 시작했죠.
시간 쪼개서 배우러 다니고, 전단지도 직접 만들어서 뿌리고 갖다 붙이고 그런데 아무도
연락을 안 주는 거야. 이제 피아노 학원은 닫았는데. 그렇게 처음 3년은 거의 돈을 벌지 못했어요."
강연을 해보니 사람 사는 것 같았고 , 인정받는 느낌이 좋았다고 한다.
강연이 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 , 서서히 강연의 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 조금씩 강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미경
"가뭄에 콩 나듯이 몇 달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들어오더니 1∼2년이 지나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사료가 시간당 2만∼5만 원 정도에 그쳤다. 지금은 강사료가 많이 올라간 상태다.
갑자기 상승한 것은 아니고 오랫동안 천천히 올라갔다."
처음에는 긴장돼서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았고 ,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강연 시작 전까지는 긴장하게 된다고 한다.
너무 긴장될 때는 강연 시작 직전에 화장실에 들어가 10분간 '잘할 수 있다'는
이미지트레이닝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강연 원고를 다 정리해놓고, 외우고, 연습도 하면서 ,
직접 운전하는 승용차 안에서도 계속 연습 한다고 한다.
강의때 당황하는 경우
"예를 들어 청중이 40대, 50대 여성들이라고 생각하고 갔지만 60대, 70대 남성분들이
많은 상황에 직면한다. 멘붕이 온다.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다.
이럴 때는 순간적으로 강의의 에피소드를 다 바꿔야 한다. 진이 다 빠지는 일이다."
7. 드림 워커 김미경
김미경은 29세에 드림 인턴으로 입문해서 약 6년 만에 드림 워커가 되게 된다.
그녀는 10%의 가능성만 보여도 도전한다고 했다.
김미경
“꿈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것, 드림 워커들은 결핍 센서가 발달되어있고 24시간을
사용하는 기술이 능수능란,내 꿈을 만들고 오랫동안 관리하려면 지혜를 스스로
구하는 ‘셀프 멘토링 시스템’이 필요하다. 내가 나 자신이 스승이 되는 것”
기업인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했고,
이제는 유튜버, 평생교육 온라인 플랫폼인 MKYU 학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김미경
"비결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지르는 거지. ‘저요!’ 할 수 있는 용기도 없으면 세상은 안 풀려요.
그것마저 가르쳐달라고 하면 방법이 없어요.
일단 눈 딱 감고 작은 것부터 도전해 보는 게 최고에요.
작은 일을 해내고 나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거에요.
어? 내가 이걸 할 수 있네? 다른 것도 해볼까? 이런 식으로.자신감은 타고 나는 게 아니에요.
연습에 의해 길러지는 거지. 요즘 학생들이 이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별 것도 아닌 수학 점수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을 하면서 자신감을 길렀으면 해요.
성공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에요. 공부 이외에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을 텐데.
요즘 학생들은 10대 때는 내신 성적 수능 성적에 휘둘리고, 대학 가면 학점에 토익에 휘둘려요.
그 길에서 벗어나세요. 다른 길을 찾아 열심히 도전하세요. 자신감은 타고 나는 게 아니에요.
연습에 의해 길러지는 거지. 요즘 학생들이 이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별 것도 아닌 수학 점수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을 하면서 자신감을 길렀으면 해요.
성공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에요.
공부 이외에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을 텐데.
요즘 학생들은 10대 때는 내신 성적 수능 성적에 휘둘리고, 대학 가면 학점에 토익에 휘둘려요.
그 길에서 벗어나세요. 다른 길을 찾아 열심히 도전하세요."
8. 김미경 슬럼프
잘 나가던 김미경은 트렌드를 놓쳐 강연에서 실패하게 되며 슬럼프를 겪게 됐다고 한다.
3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에 증권회사 고참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던중 ,
수강생들은 나이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그때 당시 김미경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수강생들 눈빛
"저런(한심한) 강사가 왜 왔을까"
김미경
"몇 년 전이었다. 당시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나온 지 꽤 오래된 시점인데, 내가 이 트렌드를 놓쳤다.
그 결과, 기업으로부터 강의 요청이 들어오지 않았다. 완전히 밀려난 것이다. 강사료도 낮아졌다.
더욱 큰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 기업에만 적용되는 줄로 알았던 것이다.
일반인과 4차 산업혁명과의 관계를 재미있게 강연할 수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전에 책을 많이 읽고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강연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안 좋았다고 한다 , 그때 당시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강연을 끝내고 받은 평가점수는 80점 이하였는데 , 그 기업에서는 다시 강연할 수 없는 점수였다고.
김미경 강연 비결
"청중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강연은 망친다. 나는 강연장에 가기 전에 참석자들의 대표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미리 파악한다."
김미경이 겪은 강연 형태
잔디밭에 누워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앞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공원 주의가 산만한 상태에서 강연
비 오는 날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 앞에서 강연
김미경의 보람 있는 경험
"나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만나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는데,
내 강의를 듣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는 사람도 있고,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다시 도전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어떤 사람은 어릴 때 친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다.
그 트라우마로 자녀들한테 화를 내곤 했다. 그는 어느 순간 모든 희망을 잃고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전화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직접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전문 상담가를 찾아갔다.
그 이후로 그는 다시 밝아졌다."
9. 김미경 터닝포인트
김미경
"내 인생에 신이 준 기회나 결정적인 순간 같은 건 없었어요.
매일 매일 김미경답게 열정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내가 있는 거죠.
수많은 연습과 도전 그리고 노력. 그 모든 것이 뭉쳐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요.
SKY 못 가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어요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게 진실은 아니에요.
내가 운영하는 CEO 스피치 과정에 오시는 분들 중 SKY 출신은 1%밖에 안돼요.
오히려 학력이 떨어지는 분들 중에 더 부자가 많아요.
어렸을 때 공부가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빨리 포기하니까 새로운 길을 찾게 된 거죠.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대기업에 가면 행복할 거 같죠?
에이…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60살 되기 전에 회사 나와야 해요.
일찍부터 자기 일 찾아서 70살 80살까지 일하면서 사는 게 더 행복한 삶이에요.
성적에 목숨 걸지 말고. 학교 알기를 우습게 알고. 교육부 알기를 우습게 아세요.
일단 가슴 쫙 펴고 자신감을 가지라니까? 그래야 인생이 풀리기 시작해요.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대신 나한테는 ‘저요!’가 있었지"
10. 한국 교육의 문제점 김미경이 전하는 학생들에게
김미경
"학생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천재성 5개씩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중 하나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우리 교육은 이 천재성을 무시하고 종합점수로 서열을 매긴다는 데 있다.
일정 수준의 평균적인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개개인이 꿈을 키울 수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10년, 20년 몰입하고 매진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게 진정한 교육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살았지.
누구나 열정을 쏟을 만한 분야는 반드시 있어요
정말 궁금해요. 열정을 내는 방법이 어디 있겠어요.
지금 들어간 학과에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대학생들,
자신이 택한 직장에 열정을 갖지 못하는 직장인들 모두 잘못된
길을 택했기 때문에 열정을 갖지 못하는 것뿐이에요.
누구나 열정을 쏟을 만한 일은 분명히 있어요. 없을 수가 없어.
하지만 집 안에만 있고 학교 안에만 있으면 과연 열정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는 거랑 똑같아요.
많이 듣고, 많이 배우고, 많이 다녀야만 자신이 열정을 쏟을 만한 분야를 찾을 수 있어요.
모임이나 동아리에도 많이 나가 보고. 아르바이트도 여러 개 해 보고.
대학 가면 다양한 수업을 듣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뛰어 다녀야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꿈을 발견할 수 있는 거에요.
이 시기가 10대 20대에 올 수도 있지만, 반면 40대 50대에 올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 고등학생 대학생들은 스스로 꿈과 비전이 없다고 힘들어 하고 조급해 한다니까.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서울대 갔다고 해서 다 꿈과 비전이 있을까? 삼성전자 들어갔다고 해서 꿈이 있을까?
한 번 붙잡고 물어봐요. 꿈이 있나. 대부분 없다니까.
지금 성적 나쁘다고 슬퍼할 필요가 없어요 하루하루를 120%로 살다 보면.
더 많은 일에 도전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면서 열심히 살다 보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와요.
조급증을 버려요. 10대부터 성적 좀 안 좋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고, 가정 형편이 나쁘다고 우울해 할 필요도 없어요.
누구나 25살부터 30살까지. 딱 5년만 정신 바짝 차려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니까?
매일마다 죽어라 노력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다 보면 꿈도 생기고 목표도 생겨요.
반면 학교 수업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어영부영 당구장 가고 PC방 가고…
이런 애들은 하루를 5%도 안 사는 거야. 여러분의 인생은 주어진 환경이나 과거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부터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한 거지. 더 많은 용들이 개천에서 뛰어 나오는 그날까지
나보고 사람들이 개천에서 용 났다고들 하는데.
나는 더 많은 용들이 개천에서 뛰어 나올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그게 앞으로의 내 꿈입니다. 봐요.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자기 한 사람도 못 먹여 살리잖아?
그러다가 20대가 되고 30대가 되면 어느 순간 나 한 사람,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릴 정도가 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지만 거기서 더 성장하면 수십 명,
수백 명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되는 거에요. 여러분도 모두 할 수 있어요.
태어난 대로, 주어진 대로 사는 사람은 바보에요.
앞으로 여러분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은 세상을 바꿀 수도 있고.
죽은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어요.
수능 실패한다고 해서 인생까지 실패하는 거 아니에요
수능을 통해 평가되는 언수외 점수는 인생과목 전체로 보면 1% 정도 될까?
여기서 실패했다고 해도 나머지 99%를 최선을 다해 살면 되요.
대신에 대학과 학과를 고르는 것은 조금 중요하니까 그에 관한 조언을 좀 해 줄게요.
일단 원서를 쓸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을 한 번 찾아 보세요.
점수만 맞춰서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는 것을 택해서는 안 되요.
좋아하는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잘하게 되고,
자신이 잘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괜찮은데 둘 다 아닌 쪽으로
가 버리면 대학에 가서 적응을 못한다니까? 부모님이나 선생님 말만 듣고
대학 갔다가는 등록금만 날려 먹어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 질 것!
지금 공부 좀 못 한다고 쫄지 말고 당당하게 사세요 일단 대학에 가면 좋아하는
공부 열심히 하면서 세상 공부를 열심히 하세요. 아르바이트 하면서 못된 사장 밑에서 돈 받는 연습 하고,
못된 손님들 대하는 법도 배우세요. 다양한 동아리 활동 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요.
대학원 가서 계속 공부할 것 아니라면 전공만 듣지 말고 흥미로운 과목 다 찾아 들으면서
대학 생활을 풍성하게 하세요. 세상에 배울 게 얼마나 많은데!
재미있는 것도 많고! 그렇게 쉴 틈이 없이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꿈도 생기고 열정도 생길 거에요.
지금 공부 좀 못 한다고, 아직까지 꿈이 없다고 쫄지 말고 당당하게 어깨 펴고 살아요.
그러면 어느새 여러분도 성공한 사람이 되어 남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을 거에요.
11. 김미경 저서
나는 IMF가 좋다 (1998)
여자이기 때문에 당하지 말고 당차게 살아라 (2001)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2003, 2014년 개정)
여성 마케팅(성공과 실패에서 배우는) (2005)
가족이 힘을 합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2009)
2010년, 2014년 개정 '아트 스피치'
스토리 건배사 1 (2010)
스토리 건배사 2 (2011)
2011년, 2012년 개정 '언니의 독설 1'
2011년 언니의 독설 2 , 키즈 스피치
파랑새 특강 1 한 달에 한 번, 12명의 인생 멘토를 만나다 (2012)
파랑새 특강 2 내 안의 스티브 잡스를 깨워라! (2012)
파랑새 특강 3 2012년 자기계발을 위한 트렌드 키워드 (2012)
한 달에 한 번,12명의 인생 멘토를 만나다 (2012)
내 안의 스티브 잡스를 깨워라! (2012)
2013년 '드림 온 Dream on'
살아 있는 뜨거움 (2014)
인생미답 (2016)
엄마의 자존감 공부 (2017)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2020)
김미경의 리부트 (2020)
REBOOT (영문판, 2021)
세븐 테크 (2022)
김미경의 마흔수업 (2023)
12. 김미경 방송 출연
tvN 김미경 쇼 (2013년 1월 11일 ~ 2013년 3월 29일) (종방)
EBS 엄마를 찾지마 (2017년 4월 24일 ~ 2018년 2월 19일) (종방)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 (2023년 2월 22일)
MBC 물 건너온 아빠들 (2023년 4월 23일)
MBC 무릎팍도사
세바시(죽어가는 꿈을 구출하라 등 외),
tvN 스타특강쇼
2023년 TV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사부
2023년 기준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집사부일체에도 사부로 출연했다.
여전한 입담을 자랑했으며 과거 기혼여성들에게 꿈을 꾸라한거에 대해 반성하는 말도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강사 중 한명으로 활동중이다.
13. 김미경 인문학 비하 사건
2013년 1월 방송된 tvn 김미경쇼 2회
청년
“저는요 자기계발서 같은 거 안 읽어요. 저는 인문학 서적 읽어요”
김미경
“어디 갖다 쓰려고?”
라고 반문하면서 시건방 떨고 있다는 식으로 조롱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인문학 비하 논란이 터졌다.
김미경
“인문학은 지혜를 만들기 위해 읽는 것이다. 그 사람의 지혜가 300페이지
서적으로 쓰이면 그가 자기계발을 해왔다는 거고, 그게 자기계발 서적이다.
근데 안 읽는다고? 웃기고 있어. 시건방 떨고…”
논란이 되자
김미경
'인문학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 자기계발서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지적한 것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반복적으로 검증되고 읽히면서 학문의 기초를 이룬 인문학 고전과
유행에 따라서 짧게 스쳐지나가는 자기계발서를 교묘하게 등치시키는 궤변이라는 반론과
아예 김미경은 인문학이 뭔지 제대로 된 이해조차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게다가 김미경은 그동안 인문학 서적을 항상 권장했다고 해명했지만, 실제로는 출판했던
서적이나 출연 방송에서 인문학에 대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14. 김미경 석사 논문 표절
2013년 3월 인문학 비하 논란으로 시끄러운 와중에 이화여대 석사 논문을 표절한 게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 커졌다. 인문학 비하 논란에선 말꼬리 잡기라면서
김미경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논문표절은 말 그대로 복사수준으로
너무나 빼박이라서 여론이 싸늘하게 식었다.
김미경
"설문조사에 집중한 논문이기 때문에 일반적 논리에 대해서는 (표절을)
찾아냈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야간대학원 분위기 잘 아시지 않느냐.
전혀 표절이니 뭐니 (따지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교수들도 논문 쓰는 것 자체를 기특하다고 생각한다.
논문 자체가 교수들이 신경 안 쓰는 논문"
결국 모든 방송에서 퇴출되었고, 강연일정도 전부 취소되었다.
이화여대 측
'부분적으로 표절로 볼 수 있지만 논문 자체의 독창성이 인정되고
당시 표절에 대한 기준이 없어 추가조치는 없을 것’
방송에서 퇴출되자,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한 것인지 표절이라고 인정했고
이후로는 약 1년간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무릎팍도사 2부가 앞에서 언급된 논문 표절로 인해 통편집되었고, 그 이후 모든 방송 출연이 끊겼다.
김미경 우울증
"내가 방송에 많이 출연할 때 우울감이 있었다.
당시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나와 관련한 기사가 지속해서 쏟아졌다. 신경이 곤두섰다.
특히 기사 댓글에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신경이 많이 쓰였다. 당시 나는 땅바닥으로부터 붕 떠서
꼬챙이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대범한 성격인데도 불안했고 힘들었다.
유명하다는 것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기본으로 돌아갔다. 일을 많이 줄였고 놀러도 다녔다. 공부도 많이 했다.
물리학, 양자역학, 사주명리학 등을 읽었다. 재미가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울증이 사라졌다."
김미경이 겪은 코로나
코로나 발생으로 수입이 없었다. 6개월 동안 강연 요청이 전혀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당시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지금은 강연 요청이 들어온다.
하지만 회사 일이 많아서 모든 요청에 응하지 못한다. 1주일에 1∼2번 정도 강연한다.
15. 김미경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모있는 김미경의 신박한 잡학사전)
인문학 비하와 석사 논문 표절로 한참 논란이 되던 시기에 김미경의 담론 자체가
산업화 시대(1960년대~1990년대)에나 어울리는 퇴행적 내용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김미경의 성공담론은 하면 된다, 소위 노오력론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단지 21세기에 어울리는 세련된 언어와 공감 키워드 포장, 화려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져 있을 뿐.
‘김미경식 힐링’은 끝났다 냉정히 말해 자기만의 확고한 커리어는 없지만 자기 철학을 토대로
입담이 좋고 그냥 듣기 좋은 말만 잘하는 설교사라는 평이 있다.
- 2021년 1월 2일 방송된 ‘북유럽’에서는 책 기부자로 출연해 방탄소년단의 팬이라고 밝혔다.
- 외국 공연을 다녀왔으며 굿즈에 몇 백만원을 썼다고 한다.
- 원래는 피아노 학원 원장도 하고, CM 송 작곡도 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나의 메시지는 개인을 깨우치는 데 집중돼 있다. 구조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내가 그 분야를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분야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그곳에 몸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냥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불만만 이야기하면 안 된다.
구조적인 문제는 그 분야에 있는 사람이 다루면 된다.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단법인 그루맘 이사장이다. 미혼 엄마 400명을 6년째 도와주고 있다.
MKYU에서도 전국에 있는 도서관에 책을 보내고 있다.
그게 5년 됐다. 홀트아동복지회 지원, 디지털 격차를 겪는 노인들 지원 등을 전국 단위로 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강연하고 싶다. 그래서 벌써 몇 년째 영어를 배우고 있다.
또 MKYU 대학을 잘 만들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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